사유문명론 34편 - 사유는 어떻게 사회를 통과하는가

사유와 사유의 관계

by 사유의 무지랭이

[과잉 투입과 무효의 장(場)]


콩나물의 자라남은

생산이 아니라 낭비를 본다.


투입되는 물의 양은 과도하고,

흡수되는 양은 미미하다.

대부분은 즉시 바닥으로 소실된다.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실패한 시스템처럼 보인다.

효율은 없고, 잔존은 거의 없으며,

성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구조는

낭비를 전제로 작동하는 장(場)이다.


[흡수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콩나물은

공급된 물의 총량으로 자라지 않는다.

흡수된 미량의 반복으로 자란다.


중요한 것은

얼마가 주어졌는가가 아니라

얼마가 체화되었는가 다.


사유 역시 동일하다.

대부분의 말은 사라지고,

대부분의 시간은 증발하며,

대부분의 사유 시도는 기록되지 않는다.


그러나

흡수된 일부만이

형태를 갖는다.


[사회는 흡수를 거부하는 구조다.]


사회는

사유를 즉각 흡수하지 않는다.


사회는 속도를 요구하고,

명료함을 요구하며,

즉각적인 반응과 효율을 요구한다.


따라서 사유는

대부분 사회 표면에서 미끄러진다.

말은 소비되고,

의미는 단순화되며,

사유는 의견으로 축소된다.


이 구조 속에서

사유는 실패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유의 통과는 침투가 아니라 침전이다.]


사유는

사회에 돌파하지 않는다.

확산하지도, 점령하지도 않는다.


사유는 침전한다.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흡수되고,

천천히 체화되며,

어느 순간 형식으로 굳어진다.


이 통과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고,

성과가 아니라 축적이다.


콩나물이

자라고 있는 순간을 보여주지 않듯,

사유 역시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는다.


[남는 것은 항상 소수다.]


흘러가는 것은 항상 다수다.

남는 것은 언제나 일부다.


그러나 사회를 통과하는 것은

언제나 그 일부였다.


사유는

다수를 설득함으로써 남지 않고,

소수에게 체화됨으로써 지속된다.


그래서 사유의 힘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에 있다.


[반복은 태도이며, 태도는 통로다.]


사유가 사회를 통과하는 방식은

전략이 아니라 태도다.


매일 멈추고,

매일 흘려보내고,

매일 조금을 흡수하는 삶의 리듬.


이 반복은

의미를 주장하지 않고,

방향을 강요하지 않으며,

결과를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태도만이

사유를 사회 안으로

조용히 이동시킨다.


[사유는 한 번에 도달하지 않는다.]


사유는

결단으로 완성되지 않고,

선언으로 정립되지 않으며,

사건으로 각인되지 않는다.


사유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매일 자란다.


콩나물처럼.


그래서 사유가 사회를 통과했다는 사실은

언제나 사후적으로만 인식된다.


이미 자라 있고,

이미 스며들어 있으며,

이미 기준이 되어 버린 상태다.


* 콩나물은 한자로 두아(豆芽),

콩의 싹이라는 뜻이다.


12세기 중국 문헌에는 **대 두아(大豆芽)**로 기록되었고, 조선시대에는 **두아채(豆芽菜)**로 재배법과 함께 남았다.


콩나물은 발명된 음식이 아니라

기다림과 반복 속에서 관찰된 생장(生長)이다.


완성이 아니라 과정,

결과가 아니라 방향.


두아(豆芽).

이미 자라고 있는 것의 이름이다.


이어 <사유문명론 35편 - 사유의 기준은 어떻게 형식화되는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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