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문명론 36편 - 형식은 어떻게 방향을 유지하는가

기준 이후의 운전대

by 사유의 무지랭이

* 기준 이후의 운전대


[형식은 목적지가 아니라 운전대다.]


형식은 도착점이 아니다.

형식은 사유가 나아가기 위해 붙잡는 운전대에 가깝다.


목적지는 시대마다 바뀐다.

도로의 상태도, 풍경도, 속도도 달라진다.

그러나 운전대가 없으면

움직임은 곧 방황이 된다.


형식이란

사유가 어떤 길 위에 있든

방향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무인의 시대, 사유는 자동이 될 수 없다.]


앞으로 사회는 점점 무인화될 것이다.

결정은 알고리즘이 내리고,

경로는 시스템이 제시하며,

선택은 이미 계산된 값으로 주어진다.


새로운 사유는

이미 만들어진 무인의 운전대를 집고

인간은 그에 따라 복표처럼 움직이게 될 것이다.


편리하고, 빠르고,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운전대는

인간의 사유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유의 방은 운전대를 포기하지 않는 구조다.]


이럴수록

사유의 방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사유의 방이란

정보를 차단하는 공간이 아니라

운전대를 외주 맡기지 않는 구조다.


방향을 결정하는 권한을

속도에도, 분위기에도, 자동화에도 넘기지 않는 것.


그래야 사유는

방향에 흔들리지 않고

기분에 끌려가지 않으며

이미 형성된 결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사회는 무인이 될 수 있어도, 사유는 무인이 될 수 없다]


사회는 무인이 될 수 있다.

시스템은 인간 없이도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사유까지 무인이 되는 순간,

문명은 더 이상 방향을 수정할 수 없게 된다.


사유는 반드시

누군가의 손에 잡혀 있어야 한다.

느리고, 불편하고, 때로는 고집스럽더라도

직접 붙잡고 있어야 하는 운전대다.


[이것이 문명을 유지하는 마지막 방패다.]


사유의 형식은

진보를 막는 벽이 아니다.

그것은 문명이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한 마지막 방패다.


무인으로 흘러가는 사회 속에서

사유만큼은 무인이 되지 않도록.


형식은 그 역할을 한다.

사유가 인간의 손에서


* 끝까지 놓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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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 시대의 책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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