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구조, 무의식의 강,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사유
* 형식은 운전대였다.
36편에서 형식은 사유를 제한하는 규칙이 아니라
사유가 방향을 잃지 않게 붙잡는 최소한의 장치였다.
그러나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운전대가 존재한다고 해서
항상 누군가가 그것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문은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이동한다.
그 운전대를,
누가 끝까지 붙잡는가.
[무인화는 판단을 제거하지 않는다.]
무인 시스템은 판단을 없애지 않는다.
오히려 판단을 분산시키고 희석시킨다.
알고리즘은 추천을 하고,
시스템은 분류를 하며,
데이터는 확률을 제시한다.
문제는 그 결과가 아니라,
그 결과가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판단은 이루어지지만
판단의 주체는 흐려진다.
결과는 발생하지만
책임의 위치는 사라진다.
[무인의 본질은 편의가 아니라 면책이다.]
무인 시대가 제공하는 가장 큰 편의는
속도가 아니다. 효율도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시스템이 그렇게 판단했다.”
“규정상 문제가 없다.”
“알고리즘의 결과다.”
이 문장들은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유를 종료시키는 언어다.
또한 인간이 통제에 손을 놓아 버린 상태로 남는 것이다.
이건 책임 회피가 아니라 책임의 외주화에 가깝다.
책임마저 인간의 영역에서 날아간다면 인류가 지금 까지 지켜온 책임지는 인간인 호모 스폰데오(HOMO SPONDEO)를 잃게 되는 첫 순간이 될 것이다.
* 호모 스폰데오 (Homo Spondeo)
‘책임지는 인간’.
판단 이후에도 물러서지 않고,
결과 앞에서 주체를 내려놓지 않으며,
시스템·규정·알고리즘 뒤로 숨지 않는 존재.
호모 스폰데오는
결정을 대신 맡기지 않는다.
책임을 외주화하지 않는다.
설명으로 사유를 종료하지 않는다.
통제가 불가능해진 이후에도
자기 이름으로 서 있는 인간.
문명이 유지되어 온 이유는
지능이 아니라
이 존재가 끝까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 호모 스폰데오 HOMO SPONDEO
SPONDEO는 라틴어로 책임이라는 뜻
[사유는 판단 이후에 시작된다.]
사유는 생각하는 행위가 아니다.
사유는 판단이 끝난 이후에도
그 결과를 붙잡는 태도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기술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이 만들어낸 결과를
끝까지 감당하는 것은
오직 인간만 할 수 있다.
[아무도 붙잡지 않을 때 문명은 흘러간다.]
문명이 위험해지는 순간은
잘못된 결정을 할 때가 아니다.
아무도 그 결정을 붙잡지 않을 때다.
모두가 흐름에 올라타고
모두가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하는 순간,
문명은 방향 없이 가속된다.
그 책임을 저야 할 인간은 어디로 가 있을까?
[무인 시대의 책임]
무인 시대에도
사유만큼은 무인이 될 수 없다.
사유는
속도보다 느리고,
효율보다 불편하며,
자동화보다 무겁다.
그 무게를 견디는 자만이
사유를 끝까지 붙잡는다.
붙잡은 인간만이 그 책임을 끝까지 버티며 그의 마당에 심어서 지키는 자로 남는다.
[결론]
사유는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책임을 놓지 않는 사람의 손에 남는다.
무인 시대의 책임이란
사유를 인간의 손에서
끝까지 놓지 않는 것이다.
이어 <사우문명론 38편 - 사유는 어떻게 흐르을 견디는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