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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신 Feb 24. 2022

대체 다른 집 애들은 뭐해서 먹이세요

두 돌 된 남자아이 한 명을 키우고 있다. 아직 어린이집 문턱은 밟아 본 적은 없고 집으로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방문하셔서 평일 주중에 아이를 돌봐주신다.


우리 집 꼬맹이는 신생아 때부터 먹성이 대단했다. 하루에 1000ml 이상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들 하는데, 베이비 타임으로 체크해보면 오후 4시쯤 이미 600ml을 넘어선다. 그때부터 어미 마음이 또 조마조마 해진다. 12시까지 1000ml 안 넘고 버틸 수 있을까...!


첫 신생아 진료 때도 아이의 하루 총분유량을 말하자 의사 선생님이 혼을 냈다. 아이가 운다고 엄마가 다 줘버리면 어떡해요...! 하다가 로타 바이러스 약을 너무나도 맛있게 꿀꺽꿀꺽 받아먹는 아이를 보며 '이 아이는 그냥 잘 먹는 아기네요'라고 결론을 내주셨다.  


딱히 요리에 별 취미가 없는 지라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유식은 사 먹이면 되지~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각보다 너무 잘(많이) 먹었고 무엇보다 이유식 만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온갖 재료를 다 다져서 때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 물론 여기에 아주 많은 장비들이 동원되어야 했지만 이유식은 한 번 만들면 5일 정도는 버틸 수 있었기 때문에 직접 만들었다.


문제는 유아식으로 넘어가면서부터 였다. 일단 아이가 쓰는 식판은 가장 기본적인 것 만해도 반찬 자리가 두 칸이다. 나랑 남편은 집 밥을 잘 차려먹지 않는다. 어른 반찬 만들면서 간 하기 전 아이 몫만 남겨놓으면 된다는데 우리 집에서는 오로지 아이만을 위해 반찬을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한국인이기에 국도 꼭 줘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미역국을 많이 끓여본 적이 없었다. 미역국, 된장국, 소고기 뭇국을 돌려가며 한 솥씩 끓여서 냉동시키면 되니 국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 반찬이다. 일단 한 번 먹는 양이 그리 많지도 않다. 두세 번 올라온 것은 뱉어 버린다. 냉장고에 들어간 차디찬 반찬도 좋아하시지 않는다. 우리 집 상전님은 반찬보다는 쌀밥을 사랑하기 때문에 본인이 삘 받으면 맨 밥만 퍽퍽 퍼서 먹는다. 그렇다고 반찬을 아예 안 주기에는 어미 마음이 또 그렇지 않다. 

유기농 채소만을 고집하다가 이유식 후기쯤 내려놓았다. 초록마을에서 한 개에 삼천 원 하는 오이가 동네 재래시장에 가니 세 개에 이천 원에 판매하는 것을 본 후로 미련을 탈탈 털어버릴 수 있었다. 

제철 채소를 소량으로 구입하는 것도 문제였는데 단골이 된 재래시장 채소가게에서 감자 한 개, 당근 한 개씩 해서 퉁쳐서 얼마에도 주시기에 버려지는 채소들도 아낄 수 있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장을 봐야 하고, 이틀에 한 번씩은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다른 집 애들은 뭘 해 먹나, 부모들이 어떻게 해주나 너무 궁금했다. 대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인스타에 유명한 계정도 찾아보고 유아식 책도 정독했다. 근데 뭔가 현실과는 다른 레시피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녀들의 자녀가 나도 부러울 따름이었다.


새 반찬이 없으면 아이한테도 미안하고 돌봄 선생님 보기에도 민망했다. 내가 너무 바쁠 때에는 선생님이 직접 장을 봐서 국을 끓이거나 반찬을 만들어주실 때도 있었다. 

아 이젠 진짜 안 되겠다 싶어서 그냥 눈 감고 네이버에 '유아식 배달'을 검색했다. 폭풍 검색 끝에 평도 좋고 후기도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그러나 막상 결제를 하려고 하니 이래도 되나 싶은 마음이 생겨서 선뜻 주문을 완료하지 못하고 남편한테 슬쩍 말을 해봤다. 


"나 애기 반찬 만드는 거 너무 스트레스받아. 그냥 배달시켜서 먹을까?"

물론 답은 정해져 있는 질문이었다. 남편의 진심인지 아니면 나의 질문 의도를 잘 캐치했는지는 아직까지 미궁으로 남아있지만 어쨌든 돌아오는 대답은 "스트레스라면서 뭘 계속 직접 해 그냥 배달시켜"였다. 


그래서 눈을 질끈 감고 결제를 완료했다. 

냉장고에 켜켜이 쌓인 일회용 용기를 보며 약간 양심이 찔리는 것 같았지만 엄마가 만들던 이름 모를 사람이 만들던 주는 대로 잘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왜 진작에 이러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밀려왔다.


육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위로의 말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인데, 남에게는 그렇게 잘도 말하면서 정작 나는 1년 동안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방금도 다음 주에 먹일 반찬을 결제를 했다. 

우리 아이는 지금까지 먹어본 적이었고, 앞으로도 내가 직접 만들 가능성이 희박한 한우 청경채 볶음을 먹어보게 될 것이다. 나한테 소고기와 청경채가 있었다면 소고기 볶음과 청경채 무침만을 만들었겠지. 난 이 두 개를 결합한 반찬으로 만들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아이 반찬을 만드는 영역은 다른 분에게 따로 능력이 있는 것이겠지.

내가 만드는 것보다 더 다양하게 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양심의 가책은 훌훌 털어버렸다.  


진작 이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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