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소신 Dec 08. 2021

계약서를 찍기 전에 멈춰서 다행이야

대한민국에서 집은 너만 지을줄 아냐?


집짓기 시작하면 10년은 폭삭 늙는다는 소리가 있다.


집을 한 번 지어본 사람들은 대부분 공감하고, 공감하지 못한 사람은 복이 많아 좋은 건축업자를 잘 만난 것이라며 부러워한다.




이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 부부가 하는 사업은 건축 쪽이다. 그중에서 대문과 휀스를 설치하는 일을 한다. 대문과 휀스는 집 안팎의 모든 공사가 다 끝나고 맨 마지막에 시공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 이상 포크레인같이 큰 차가 오고 가지 않아도 될 때 대문을 설치한다. 그 말인즉슨 대부분의 건물주들이 우리를 만났을 때는 그 수많은 건축업자나 시공업자들 중 누군가에게는 돈을 떼어 먹혔다던지, 하자시공을 했다던지 무슨 일을 겪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와 처음 상담할 때는 일단 경계를 한다. 그런데 나중에 시공을 하기로 계약을 하고 일을 하면서 찬찬히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눈물 없이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다들 잔디 깎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쓰는 거지 책으로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건축업자를 잘 못 만나면 그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봤기 때문에 우리는 건축업자 찾기에 신중하기로 했다.


네이버 카페 중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보를 나눔 하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그곳에 정말 자료들이 많이 있어서 필수자료들을 정독했다. 하면 할수록 무서워서 집을 못 짓겠다는 생각이 덜컥 났다. 대부분 내가 ~~ 이것을 알았다면 더 잘 지을 수 있었을 텐데, 짓기 전에는 몰랐던 ~~ 상황들 같은 류의 정보가 많았다. 집 짓는 거 정말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신축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건축소장들을 더러 만날 때가 있다. 일처리가 지저분한 사람에게는 아예 말도 안 꺼냈고, 일을 꼼꼼히 하시는 것 같은 분들에게 대략적인 견적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서 자재 수입이 안돼서 자재값이 평균 3배는 넘게 올랐고 그마저도 상품이 좋지는 않단다. 가장 정확한 견적은 설계도면을 가지고 오면 얘기를 하자 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날을 잡고 건축박람회에 갔다. 제일 목 좋은 곳에 인터넷으로 전원주택 짓기 몇 번만 검색하면 나오는 건축업체들이 있었다. 상담을 받아보니 그리 바가지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건축주와 건축팀 단톡방을 보여주며 매일 진행이 어디까지 되는지 일일 보고하는 현황도 보여주었다. 무려 박람회 특가로 그 달까지 계약을 하면 이것저것 서비스로 주겠다고 했다. 이름 있는 곳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지만 네이버 카페와 주변에 건축 관련된 분들이 다들 말렸다. 그런데는 회사는 이름만 있고 그냥 하청으로 굴러가니 나중에 하자가 생겨도 책임을 이도 저도 안 지고, 인건비 때문에 단가만 더 높아진다고 해서 깔끔하게 패스.


그러다가 엄마와 20년 된 지인인 어떤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아저씨로 말하자면 막무가내 정신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어'를 바탕으로 몇 채도 한 두 달 만에 뚝~딱~! 지어버린단다. 단점은 무식.. 하다..? 우리 땅을 같이 보러 갔다가 엄마랑 이야기하다가 잠깐 보니 바로 뒤에서 쉬야를 시원하게 갈겨버리지 않나. 두 마디에 한 번씩 추임새처럼 c 팔 저 팔을 찾고 사람 면전에다 줄담배를 연거푸 피워버린다. 첫 미팅을 하고 내가 엄마한테 '매너 없고 무식해. 저 사람한테 짓지 말자'라고 했다. 엄마는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는 건 원래 알고 있었고, 집 지을 때는 저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이 있어야 집이 완성된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 그 아저씨가 소개한 설계사무소에 계약금을 내고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도면이 거의 확정되었을 때 땅의 용도가 우리도 모르는 새 바뀌어서 설계도면을 엎고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 사이 겨울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봄에 집을 짓자고 했는데 설계사무실에서는 이를 '설계도면을 나중에 그려도 된다'라고 자기들끼리 생각하여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아예 진행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몇 번 전화해도 안 받더니 뭐가 바뀌어서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고 어쩌고.. 그런 걸 왜 말을 안 해?


그 상황을 그 아저씨한테 했더니 또 설계사무소에서 전화해서 욕을 또 한바탕 했나 보다. 사무소에서 도면 그리는 일이 또 진행이 되었다. 엄마가 말했던 필요하다는 막무가내가 이런 건가... 싶었다.


건축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는 건축주가 갑, 건축업자가 을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입금하는 순간 갑과 을의 위치는 바뀌어 버린다.

그런데 도장을 찍기도 전에 우리가 을이 되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상황이 발생했다.


몇 달 전에는 술에 잔뜩 취해서 한밤중에 엄마한테 전화하더니 '나 다 때려치울 거야~~~~ 집 알아서 지으셔~~~' 하고 뚝. 다음날 죄송하다며 싹싹 빌길래 엄마가 한 번은 넘어갔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돈이 필요하니 몇 천만 원을 빌려달란다. 일부는 빌려주고(물론 현금보관증과 각종 서류는 다 받음) 일부는 거절했더니 자신의 부탁을 거절했다며 좋은 업자 만나서 알아서 집을 지으라는 통보아닌 통보가 왔다. 물론 이틀만의 장문의 사과 문자가 오기는 했지만 우리의 인내심은 여기서 한계. 도장을 찍기 전에도 저런 식으로 나오는 사람한테 우리 집을 맡길 수 없다.


그렇게 다시 건축업자 찾기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혹시 급매로 나온 땅 없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