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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Mar 23. 2016

따뜻한 카페모카 한 잔

이책이글 6회_이글_카페모카


지긋지긋하게 더웠던 올 여름 중에서도 가장 더웠던 날, 예고도 없이 퍼부어대는 소나기와 함께 그녀가 들어왔다.

"따뜻한 카페모카 한잔 주세요. 샷 추가해주시고요, 초콜릿 시럽 많이 넣어주세요."

비가 와서 그런지 샴푸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꽃내음이 나는 샴푸 향과 커피 향이 묘하게 어울려서 잠시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뒤, 그녀가 다시 왔다. 

"따뜻한 카페모카 한잔 주세요. 샷 추가해주시고요, 초콜릿 시럽 많이 넣어주세요."

지난번에는 향기에 취해 다른 생각은 못했었는데, 카페모카에 샷 추가와 초콜릿 시럽 많이라니. 커피맛을 잘 아는 취향이 확실한 사람일까? 주문하는 말투를 보면 조곤조곤 부드러워서 단호한 사람일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뒤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같은 시간, 토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어김없이 그녀가 들어왔다. 고개만 돌려도 땀이 날 것 같이 더운 날이나, 처음 왔던 날처럼 바닥이 파일듯한 폭우가 내리는 날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금요일 밤부터 그녀를 기다리게 되었다. 여우가 된 기분이다.


토요일이 되면 아침부터 정성스럽게 커피머신을 닦았다. 머리에 왁스를 발라 멋을 내보고 앞치마도 전날 빨아서 잘 말려둔 새 것으로 갈아입었다. 그녀도 내가 유난히 신경 쓴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가끔 수줍게 웃었다.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뒤돌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볼 때면 아침부터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커피를 주문하고 내가 커피를 만들어서 건네주는 그 시간을 위해 나머지 일주일이 있었다. 그 나머지 일주일은 그녀의 하루를 상상하며 흘려보냈다. 토요일에만 오는걸 보면 평일에는 바쁘겠지. 초등학교 선생님 같은 따뜻한 일이 어울리겠다. 그녀도 사람인데 나처럼 아침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낼지도 몰라. 여자들은 화장하고 준비하는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고 하니까 아마 틀림없겠지. 평일에 일이 끝나면 독서모임 같은 걸 하거나 영화나 뮤지컬을 보러 다니면서 문화생활을 할 것 같아.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위해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그녀가 오지 않는 날에도 종일 카페모카만 만들었다. 좋은 원두를 찾고 라테아트도 연습하고 커피머신도 더 좋은 것으로 바꿀까 고민하고 있다. 더 맛있는 커피에 하트 모양 라테아트를 만들어 주면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아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라인더에 있는 커피콩을 갈고 포터필터에 담아 탬핑을 한 뒤에 머신에 꽂아 커피를 내리는 과정이 특별한 의식같이 느껴졌다. 잔에 담는 커피가 내 마음인 것만 같아서 매번 긴장이 된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몇 잔을 내렸는지 모른다. 


오늘도 그녀가 왔다. 바 아래에서 컵을 정리하고 있었지만 문을 여는 순간 향기로 이미 알 수 있다. 오늘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카페모카를 만들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라테아트로 하트를 그려줘야지. 나는 거울을 보며 여러 번 연습했던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일어나 주문을 기다렸다.


"아이스 초코 한잔 주세요. 얼음은 조금만 넣어주시고요."











이책이글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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