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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섬 Dec 26. 2018

내가 얼마나

이책이글 12회_이글_괴물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사람 같지 않은 놈들과 대화하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다. 성준은 한숨을 내쉬며 포장마차 간이의자에 몸을 구기고 앉았다.

고급 술집에 갈 수도 있었지만, 포장마차에 오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사람 취급 안 해주는 놈들에게 마음껏 욕해주던 그때로.


"아줌마, 이게 말이 돼요? 아니 사람들이 말이야, 바랄걸 바래야지. 다 같이 어려운 마당에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고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쩌자는 거야! 좀 같이 살아야 하지 않아요? 자기들이 그러면 나는 어쩌라고?"

주인 아주머니는 안주거리를 손질하며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내가 대학 다니면서 한창 데모하고 그럴 때도 이런 대접은 안받았어요! 다들 대장님 대장님 하면서 따라 다니고 경찰들도 날 함부로 안 했다고! 내가 누군 줄 알고들 그러는 거야 도대체!"


주인 아주머니가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이 부장이 성격이 좋아서 그렇지 뭐~ 많이 배운 사람이 좀 참아요."

"아, 정말. 내가 아줌마 얼굴 봐서 참아요. 알죠?"

"그럼~ 알지. 그러니까 오늘은 적당히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요. 아유~ 근데 저 사람은 어쩌면 좋나 그래.."

아주머니의 눈길이 옆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남자를 안쓰럽게 쓸어갔다.


"누구예요? 많이 마셨나 보네요."

"저 양반도 단골인데 얼마 전에 회사에서 잘렸나 보더라고. 원래 매너 좋고 단정한 사람인데.. 요즘 많이 힘든가 봐. 전화도 계속 오는데, 집인가?"

"제가 받아볼게요. 여보세요? 이 전화 주인분이 지금 많이 취하셔서요. 예예, 댁이 근처시네요. 저희 집도 그쪽이니까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예~"

"이 부장이 데리고 갈려고?"

"보니까 옆동 사는 분이네요. 안 그래도 이제 가려던 참이니까 가는 길에 데려다 드리죠 뭐."

"아유~ 이 부장은 역시 사람이 참 좋아~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요. 그 사람 정신이 없어서 좀 무거울 텐데.."

"괜찮아요. 그럼 들어갈게요."


성준은 남자를 들쳐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꽤 무거웠지만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깨에 사람을 둘러메니까 대학 다닐 때 스크럼 짜던 느낌도 나고, 뭔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난 원래 이렇게 좋은 사람인데, 이놈의 세상은 정말 날 알아주질 않는다니까.


ㅡㅡㅡ


"부장님,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십니다. 어제 한잔 하셨나 봅니다."

"어제 일이 좀 있어서."

성준이 어제 남자를 데려다 줬던 일을 말하려고 하는데, 최 과장이 먼저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어제 평택에서 사람이 또 죽었답니다."

"또? 그 자식들은 도대체 누구를 죽이려고 자꾸 죽어. 죽으면 해결이 되나? 못 견디겠으니까 그냥 도망치는 거 아냐? 사는 게 안 힘든 사람이 어딨다고. 에잉~ 약해빠진 놈들."

"어떻게 처리할까요?"

"뭐 한두 번이야? 예전처럼 처리해. 알지? 너무 과하게 예의 차리지는 말고. 거리를 두라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부장님이 오신답니다. 지난번 일처리를 잘했다고 격려차 오시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이. 그 얘길 먼저 해야지. 어제 그 일 본부장님은 아직 모르시지? 적어도 여기 들렀다 가실 때까지는 모르시게 하자고.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요. 이제 언론에서도 관심이 별로 없어서 문제없을 겁니다. 일단 사무실 청소부터 하겠습니다."

"그래, 얼른 서둘러서 하라고."


최 과장을 내보낸 성준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어제 죽었다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어제 집에 데려다 줬던 남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빌어먹을.'

길게 내뿜은 담배연기가 성준의 주위를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이책이글 팟캐스트]

http://www.podbbang.com/ch/9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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