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에서 통찰로 자라난 나의 이야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 왔다.
중학교 입학 시절 받은 IQ 142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을 보면 단순한 사실 하나만 보지 않고 그 배경의 구조·맥락·원인을 동시에 떠올리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생겼다.
사람의 말투, 표정, 반복되는 행동, 선택의 흐름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읽어내는 일도 익숙해졌다. 심리학 책, 영화 속 캐릭터 분석, 논문, 주변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감정 변화까지도 모두 나에게는 하나의 데이터였다. 나는 그 요소들을 종합해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를 추론하는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체화하며 성장했다.
중2 때 보았던 영화 식스센스, 그리고 소설책 스즈키 고지의 링. 가장 충격적이었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준 매체였다.
그러다 보니 ‘혹시 내가 놓친 건 없나?’를 스스로에게 되묻는 과잉 인지형 리플렉터처럼 점검 메커니즘도 자리 잡았다. 이는 판단을 정교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힘 역시 함께 길러주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모든 기반에는 늘 작동하는 내 감정, 해석, 또는 어떤 마음이 드는 이유를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다시 정돈하는 습관. 덕분에 감정 그 자체보다 ‘왜 이 감정이 만들어졌는가’
라는 구조를 먼저 이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한편 나는 상대의 감정을 빠르게 읽어내고, 동시에 그 감정이 만들어진 원인과 배경 구조를 분석하고 공감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공감과 분석이 동시에 작동하는 이 조합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다층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런 나의 흐름이 항상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고 느낀 판단이 사실이 아니길 바랄 때도 있었고, 특히 내가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끼면 그 감정은 상대에게 여과 없이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감정은 순식간에 전달되고, 그 감정은 다시 서로의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능한 한 마음을 닫지 않으려 하고,
열어두려고 애쓴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켜주는 것은 언제나 마음의 열린 공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을 관찰하는 본능이 있었다. 밝고 활발했고, 어디에서든 주저 없이 나를 드러낼 수 있는 당당함도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일곱 살 때였다. 친구와 놀던 중, 파란 트럭이 친구를 치고 그대로 달아났다.
모두가 놀라 당황하던 순간이었지만, 나는 이상하리만큼 그 장면의 디테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트럭의 색, 방향, 속도, 운전자의 움직임까지.
경찰이 와서 상황을 묻자 나는 그 질문에 정확히 대답했고, 그때의 경험은 내가 ‘상황을 구조적으로 기억하고 이해하는 힘’을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키우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는 동네 쌀집 아저씨가 쌀을 배달하러 오던 날이었다.
오토바이에 실린 쌀포대를 그대로 둔 채 잠시 대기하던 순간, 택시가 그 오토바이를 들이받으며 포대가 터지고 쌀이 바닥에 쏟아졌다.
사람들이 놀라 움직이지 못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택시의 번호판을 크게 외쳤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을 정도였다.
그 번호가 결정적 실마리가 되어 결국 그 택시 기사를 잡게 되었고, 나조차도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판단하고 기억했는지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즉 ‘흐름·구조·원인을 종합적으로 읽어내는 사고’, 그리고 급박한 순간에도 핵심 단서를 정확하게 캐치하는 관찰력을 더욱 강화해 준 것 같다.
그 능력은 시간이 지나며 더 구조화되었다. 단순한 관찰을 넘어 고도추론형 사고, 통합관찰·인지형 사고, 리플렉터 기반 메타인지적 분석, 그리고 감정선을 인지적으로 해석하는 분석형 공감까지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형태를 갖춘 건 아이를 낳고 난 이후였다. 아이와 깊은 정서적 유대감 속에서, 나는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 마음이 나를 다른 세상으로 이끌었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여행을 많이 다녔고, 함께 책을 읽으며 시야를 넓혔고, 음악을 통해 풍요로운 감정을 느끼길 바랐다.
그 시간들은 단순한 육아가 아니었다.
나를 더 깊게 만들고, 더 넓게 보게 하고, 더 정교하게 연결하는 과정이었다.
아이를 통해 내가 성장했고, 내가 가진 재능이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랐다.
아이의 태명은 ‘태양’이었다.
빛이 온 세상을 비추듯, 아이 역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 세상을 밝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준 이름이었다.
이제 아이는 카이스트 입학을 앞두고 있다.
나는 그저 그 아이가 스스로 갈고닦은 재능과 기량을 세상에 마음껏 펼치기를, 그 빛이 자신의 삶과 세상의 일부를 더 밝게 만들어 주길 조용히 응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