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T야? 아니 나 F인데 - MBTI에 대한 고찰 2

(2) 상상하는 현실주의자

by 사유정원

나를 알아가기 위해 하는 테스트는 꽤 재미있다.

나는 매우 현실적이고, 상상이라고 해도 대부분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한정된 상상을 하는 사람이다. 공상이나 판타지적인 상상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MBTI 검사를 할 때만큼은, 머릿속에 온갖 상황 시뮬레이션을 펼치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 상상을 계속하며 질문에 답하는 그 시간이 생각보다 꽤 즐겁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말 모든 검사지에 진심으로 답했다.

검사 결과는 당연히 ESFJ나 ESTJ일 거라 예상했다.

요즘 나는 내 성격이 예전보다 훨씬 T(사고형)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새로운 사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훨씬 길다.

거의 한 달에 28~29일은 일을 한다. 종일 일만 하는 건 아니더라도,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뜻이다.

일이 끝난다는 개념도 없다.

일은 늘 쌓여 있고, 나는 쫓아가며 수습한다. 단지 그 순간 꼭 해야 하는 급한 일을 순서대로 처리할 뿐이다.


친구를 만나도 노트북을 들고나가거나, 약속 전후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내 머릿속은 대부분 일이 지배하고 있다.


업무를 볼 때 감정적으로 휘둘리면 힘든 일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요즘은 대부분 ‘T적인 나’의 사고가 생각을 지배한다.


게다가 친구들이 상담을 요청할 때 내 반응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긴 하지만, 대부분 객관적인 관점에서 조언을 건넨다.

감정보다 상황을 우선으로 바라보는 편이다.

그래서 이번엔 분명 T가 나올 거라 확신했는데,

웬걸? 세 번의 검사 모두 F였다.


첫 번째 검사에서는 ENFJ,

두 번째 검사에서는 ENFP,

세 번째 검사에서는 ISFJ.


나는 정해진 결과보다 성향의 비율과 해설을 읽는 걸 더 즐긴다.

결국 MBTI도 같은 결과를 받은 사람에게 동일한 설명이 제공되지만,

그 해석은 사람마다 다르게 작동한다.

그래서 나는 해설보다 성향 비율을 본다.

그걸 보면 ‘나는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치우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균형 잡힌 회색지대의 나를 보는 기분이랄까.


검사하는 사이트마다 질문의 뉘앙스가 달랐다.

답변 방식도 다르다. 어떤 문항은 명확한 선택이 가능했지만, 어떤 문항은 애매했다.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문장도 있었고,

둘 다 내 안에 확실히 존재하는 성향이라

‘중립’을 고를 수밖에 없는 문항도 많았다.

그건 모르겠어서 중립을 택한 게 아니라,

양쪽 모두 나에게 있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한 중립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MBTI를 단정적인 ‘결과’로 보지 않는다.

확답을 얻기 위한 검사라기보단, ‘나는 이런 부분이 있구나’ 하고 스스로를 관찰할 수 있는 기회로 본다.

그 시간이 나를 조금 더 잘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내가 처음 MBTI를 해본 건 아마 10년 전쯤이다.

그때는 한 친구가 단체 톡방에 링크를 보내며 “이거 해봐!” 했던 게 시작이었다.

그때의 결과도 ESFJ였다.

그 결과를 자주 까먹어서 캡처해 두고, 누가 물어보면 그걸 보고 대답하곤 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내 MBTI를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그만큼 나에겐 결괏값은 중요하지 않았다.


라떼는… 혈액형을 물었다.

지금은 웃기게 들리지만, 정말 그랬다.

나는 A형인데, 대부분의 지인들은 내 활발한 성격을 보고

B형이나 O형일 거라고 추측했다.

일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차분하고 꼼꼼하다고 해서

A형이나 AB형 같다고 했다.

그때도 늘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혈액형으로 나눌 수 있지?”

타고난 피로 성격이 결정된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가족끼리도 이렇게 다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MBTI가 혈액형보다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을 더 세밀하게 보여주니까.

하지만 MBTI조차도 결국은 나의 일부일 뿐,

나를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그건 스냅샷처럼 ‘그 시점의 나’를 포착하는 도구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그 스냅샷 속에서

조금 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중이다.


MBTI는 여전히 나를 다 담아내진 못하지만,

나를 조금 더 들여다보게 해 준다.

그리고 그건, 나를 알아가는 데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요즘 누군가 조언을 구할 때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야, 너 T야?”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나 어쩌면 T로 바뀐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려 애쓰는 마음 안에서도,

판단의 밑바닥에는 늘 이런 생각이 있다.

‘왜 이런 상황에 놓였을까?’

‘이 순간,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어떤 마음으로 나에게 상담을 하는 걸까?’

결국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F형 인간이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공감과 위로,

그리고 ‘나라면’이라는 가정이 들어간 해결책뿐이다.


상대방의 마음은 F감성으로 이해하고, 해결은 T처럼!

그게 나만의 조언 방식이다.

그래서 결론은 늘 같다.

“아니, 나 여전히 F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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