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짐과 전진 사이를 살아가는 법

by 사유정원

사람은 누구나 무너진다.

그리고 어떻게든 다시 살아가며 나아간다.

나는 그 둘 사이를 오가며 살아온 것 같다.

아주 크게 무너졌다가, 또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서고, 다시 움직이고, 다시 무너지고…

예전에는 이게 너무 부끄러웠다.

왜 나는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왜 감정 하나에 이렇게 숨이 가빠지고, 하루의 리듬이 뒤틀릴까?


아마도 나는,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F’였다.

드라마 한 장면에도 울컥하고, 친구 하나의 말에도 금방 마음이 젖어들고,

누군가의 표정 하나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하곤 했다.

감정이 나를 흔들어놓으면 하루치의 에너지가 통째로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은 그래서 감정을 억누르려고 했다.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생각을 차단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척, 괜찮은 척…

하지만 감정은 눌러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파도로, 더 강한 반동으로 돌아와

나를 예전보다 더 크게 무너뜨리곤 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무너짐은 부끄러운 게 아니고, 약한 것도 아니고, 잘못도 아니다.

그건 그냥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삶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다하고, 아무리 애쓰고,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결과는 언제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곤 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마다, 나는 더 크게 무너졌다.


사람이기 때문에.

좋아했기 때문에.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마음이 진심이었기 때문에.


그러다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이건 내 능력 밖의 영역이구나.

아무리 고민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세상에 이렇게나 많구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실을 깨달았음에도 마음은 여전히 힘들어하더라.

통제 불가능하다는 걸 인정해도 무너질 때는 똑같이 아팠다.


그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앞으로도 또 무너질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게 잘못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라는 걸.


파도가 올 때마다 맞서지 않아도 된다.

도망치지도 않아도 된다.

그저 파도를 타면 된다.

넘어져도 다시 떠오르면 되고, 잠시 잠겨도 다시 숨을 쉬면 된다.

그렇게 파도를 타듯이, 무너짐과 전진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마도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을 바꿨다.

감정이 올라오면 피하지 않는다.

도망가지 않는다.

슬프면 슬픈 대로 온전히 느끼고,

아프면 아픈 대로 잠시 멈춰 서서 숨을 들이마신다.

그리고 그 감정이 흐를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뭘까?”

“이 일이 정말 내 삶 전체의 무게만큼 중요한 건가?”

“그래,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채로 놔두자.”


감정이 지나가고 나면,

그제야 나는 다시 내가 서 있던 자리로 돌아온다.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잊었던 루틴을 다시 붙잡고,

그날의 균형을 다시 맞춰본다.


나는 그래서 한동안

‘나 이제 T 아니야? 감정보다 행동이 더 빠른데?’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여러 MBTI 테스트가 알려준 건 단 하나,

나는 여전히 F라는 사실이었다.

근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내 중심축은 결국 마음에서 나온다.

다만 그 마음이 무너졌을 때 다시 전진할 수 있는 방식은

예전보다 훨씬 단단하고 건강해졌다는 것뿐이다.


나는 여전히 감정으로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난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혹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충분히 흘려보낸 뒤

그 빈자리에 이성을 끼워 넣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성장이라고 믿는다.

감정에 흔들리는 게 아니라 감정을 쓸 수 있는 사람.

감정에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감정을 흘려보내는 사람.

그렇게 무너짐과 전진을 반복하면서

나는 점점 단단해지고 있다.


무너진다고 멈추지 않는다.

무너졌기 때문에 멈추는 게 아니라,

무너졌기 때문에 더 균형있게 전진할 방법을 알게 된다.


그게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무너짐과 전진 사이 어딘가에서

나만의 균형을 찾아가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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