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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침 오늘 아침 Jun 13. 2023

공부의 위로

04 글로 밑줄을 긋다


스물둘 나도 그 쓸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 강의를 들었다. 그것도 대학 수업이 아닌 Daum 카페에 개설된 자발적 모임으로, 주인장님이라 불리던 분이 강의록을 만들었는데. 매주 업데이트 된 원고를 문방구에서 프린트해서 A4 바인더에 모으고 독음은 mp3 파일로 받아서 외우고 주기적으로 숙제를 치르듯 녹음해서 올리는 방식. 그렇게 외장하드 어딘가 있을지도 모를 수업.



'그 언어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 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그런, 위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서너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낭만적이지 않던 옥탑방에서 여름과 겨울을 버티면서도, 수년간 얼굴도 직업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과 굶주린 지식의 허기를 채우며 그렇게 지냈다. 그렇다고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도 아니었으면서, 평생 쓰이지 못할 그 언어를 익히는데 자위와 냉소를 섞으며 그 시간을 버티듯 보냈다. 기억 저 아래 가라앉아 있던 환영 같던 날이 작가님의 이 문장을 통해 떠올라 길게 밑줄을 긋는다.


"Es irrt der Mensch, solang'er strebt."


‘괴테의 [파우스트]를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 말이 될 것이라고 선생님은 일러주었다...(중략).. "분투하는 인간은 길을 잃는다."라고도 해석될 수 있는 이 문장은 흔히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라고 번역하는데,‘


책 한 권을 쓸 때에 꼭 찾아오는 고비라는 페이지 즈음에서 마주친 문장은 밑줄과 함께 책 모서리에 답신과 같은 글도 남긴다.


(때로, 사람은 정말이지 외롭지 않군요. 방황이 낯선 자 마음 둘 곳이 없어 떠돌다 그대의 언어로 위로를 받고는 조금 울다, 다시 버틸 만큼 괜찮아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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