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글로 밑줄을 긋다
다독가도 아니고 완독에 대한 의지도 없는 나는, 책이라는 물성 그 자체를 좋아한다. 페이지가 넘겨질 때마다 종이가 어깨를 감싸 안는 아늑함이, 검은 활자의 숲을 거닐 때면 자모음의 모서리가 손끝에 닿는 단호함에 때때로 정신이 아찔해지기 십상이다.
그 맛에 빠져 냉장고 위, 신발장 아래까지 손 닿는 곳곳에 책을 두고 지내길 수년. 어느 순간부터는 필요할 때 어떤 책을 꺼내 들어야 할지 본능적으로 아는 편이다. 그래서 좀 의외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끄덕여지는 트레이더 김동조 님의 글.
사실 에세이는 선호하지 않는다. 굳이 책이 아니어도 될 만큼 귀가 따갑고 눈이 뻑뻑하게 주변을 관찰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덕분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이처럼 견고하게 짜인 개인의 일기가 주는 통찰력에는 어김없이 무릎을 꿇게 된다. 어느 페이지에선 어른이라는 글자가 겹쳐 보이니, 읽는 도중에 덮어 두었다가 한참이 지나 다시 펼쳐도 충분하다.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
이처럼 글로 따라 써보면 더 좋은 문장이 곳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