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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삶을 인식하는 순간에서 시작한다.

<창조적 행위:존재의 방식>을 읽고_

by 사유무대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으니까, 네가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어. 너도 아름다움의 길에 들어설 수 있어」
영화 <와일드> 중에서

창조의 재료는 삶 속에 있다. 인식하지 못하고 흘러가는 내 주변을, 자연을, 그리고 우주가 보내는 메세지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예술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창조는 없던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알아차리는 순간이다. 나의 환경, 경험과 사유, 흩어져 있던 상상력이 나의 필터를 통과하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다. 이때가 예술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예술가는 이 순간을 포착하여 자신의 관점으로 세상에 내보내는 사람이다. 릭 루빈은 누구나 가능하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씨앗을 발견하는 것도, 필터에 거르는 것도, 자기의 관점으로 예술을 인식하고 세상에 내보내는 것도,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창조자는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는 없는 이유다.
어느 분야에서나 고수(高手)들은 말한다. 힘을 빼라고,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남보다 자신을 우선에 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하지만 하수들은 알지 못한다. 하수들은 최선을 다해 끝 간 데 없이 가봐야 장기전으로 가려면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된다. 앞 뒤 안 재고 무조건 달리고 코피를 쏟아봐야 앞서 나가도 결국엔 남의 인정보다는 내가 나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수들이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경험과 시간이 쌓여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것이 쌓여야 뺄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릭 루빈은 고수다. 그의 디스코그라피가 말해 주듯 예술성과 상업성을 고루 갖춘, 남들보다 훨씬 특별한 안테나를 갖고 있는 고수다. 예술가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기 믿음, 예술의 완성이 아닌 성장, 예술가들의 경쟁이 아닌 협업에 대해 말하며 자기 인식과 자기 관점이 중요하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이런 것들을 어찌 하수들이 알겠는가. 그도 거의 40년 동안 많은 것들이 쌓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리라. 이제야(2023년) 책을 쓴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릭 루빈의 차분하지만 따뜻하고 강력한 메시지는 하수든 고수든 모든 예술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


‘너는 개인이며 우주다. 너는 무한한 창조자다. 너의 인식과 관점을 존중해라.’

이 책을 예술교육을 시작한 초기에 읽었다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보태기도 바쁜데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벽해진다는 말을 이해했을까? 모방하기도 벅찬데 나의 관점을 드러내기가 쉬웠을까? 도대체 무엇을 빼야 할지를 알기나 했을까? 예술교육가로 20년, 이제야 릭 루빈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겠는데 과연 시작하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가끔 후배들을 만나 수업을 공개하거나 조언을 할 기회가 있을 때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한참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엔 ‘경험해 봐, 나는 20년 했으니 이렇게 말하는 거고 이건 나의 경험에서 할 수 있는 말이야. 당신은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 스타일을 만들어야 해’라고 말이다. 하지만 릭 루빈이 그러하듯 선배들의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진심 어린 조언들은 후배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후배들 또한 그의 후배들에게 그리 하리라 믿는다.




_2025년 5월 교육연극연구소 사유무대 김태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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