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유년기의 예술> 1장~4장을 읽고_
놀이의 바탕은 인간의 감정 스펙트럼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비겁함, 유치함, 두려움, 우쭐댐, 지나친 솔직함’ 같은 어른스러움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어두운 감정에 기반을 둔다. 놀이란, 이런 감정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조절되고 다듬어지는지를 배우는 과정이며, 이는 곧 어른이 되어가는 진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작스럽게 어른스러워진 아이들, 즉 정답만 알게 된 아이들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그들은 타인의 다채로운 감정이나 부정적인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며, 어린 시절 해소되지 못한 감정이나 충동이 뒤늦게 솟구칠 때 자기 자신에게 수치심과 혼란을 느낀다. 이런 어른들이 많아질수록 체면만 중시하고 내적으로는 곪아가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놀이의 단계들(단순 모방 → 상상 변형 → 이야기 재구성 → 기술 습득) 사이사이에 교육자인 우리가 어떤 타이밍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할지 고민이 필요하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이미 이런 단계를 많이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제한된 경험으로 인해 아이들의 놀이가 시작조차 되지 못하도록 무의식적으로 방해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개입’에 있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 개입할 때는 판을 깔아주고, 인내심을 가지는 태도가 핵심이다.
• 아이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능독적 관찰자이 필요가 되어야 한다.
능동적 관찰자란 무엇인가? 그러나 요즘 들어 많은 교육자들이‘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알아서 성장한다’,‘어른이 개입하면 아이들이 망가진다’는 이론적 주장들을 잘못 해석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때로는 이러한 주장이 교육자의 태만함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국가 또한 놀이 중심 교육 정책을 도입하면서 실질적인 방법에 대한 고민 없이 제도를 시행하는 모습을 보인다. 최근 유아교육에서 놀이 중심 기조를 보면,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사라지고, 보육 교사들이 레고나 색종이 같은 도구만 던져놓고 방치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와 관련해 나의 경험과 관련된 고민이 생긴다. 1학년 늘봄 수업에서 한 아이가 연극 속 호랑이 바위에 대단히 몰입해 소원을 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계속 수입차, 로또를 거론하며 돈과 관련된 소원만 빌었다. 나는 은연중에 바위의 역할로서 “자신만을 위한 소원 말고, 다른 사람과 세상을 위한 소원은 없어?”라고 다른 생각들을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아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나는 연극을 중단하고 아이에게 드라마와는 관계없는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한 선택이 과연 옳았는지,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했던 개입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고작 1학년이었고, 연극 속 몰입된 상태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대사였기 때문에 더욱 고민스러웠다.
항상 어려운 부분이다. 수업을 운영하면서 그냥 넘어가야 할 것과, 어른이자 교육자로서 반드시 개입해야 할 순간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는 단순히 상황이나 관계의 문제, 아이 고유의 특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들에 휘둘리지 않고, 좋은 개입을 위한 ‘목적’과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에 대해 교육자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_ 24년 12월 사유무대 권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