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근, 수프로 먹기

연근 수프는 어떤 맛이 날까요?

by 사유식탁


연근은 본연의 맛보다는 양념이든 소스든 기름이든 닿는 모든 것과 조화로운 맛을 내는데, 여기에 식감이라는 한 끗으로 자기만의 매력을 또렷하게 남깁니다. 그래서 조림으로 만들어도, 샐러드나 무침을 만들어도, 전으로 부치거나 튀겨도, 뭘 해도 맛있죠. 그런데 연근 수프는 먹어본 적도 만들어 본 적도 없어서 문득 궁금했습니다. 특유의 맛이 강한 재료는 아닌 데다 곱게 갈아버리면 식감도 사라지고, 지금까지 먹어본 연근맛이랑은 확실히 다를 테니까요.


그래서 연근 수프는 어떤 맛일까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뾰족한 맛은 아니지만, 감칠맛만큼은 확실합니다. 상당히 맛있어요. 한 입 먹으면 금방 또 먹고 싶어지는 그런 감칠맛이요.


만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양파 한 개를 볶다가 연근 큰 것 한 뿌리를 작게 잘라서 볶아요. 자박하게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푹 끓이다가 블렌더로 곱게 갈고요. 두유나 우유 넣고 한소끔 끓이고 들깨가루를 넣어 줍니다. 소금으로 중간중간 간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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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근 수프를 먹는데 문득 요조 생각이 났어요. 거의 20년 만에 <인간실격>을 다시 읽었거든요. 그때는 주인공 요조가 나랑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고통을 자처하지 않고는 어쩔 도리 없이 나약했던 요조가 그냥 안쓰러워요.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내가 본다면 이렇게 안쓰러워 보인다는 건가 싶다가도, 그런 시기를 지나서 지금은 좀 안정된 삶을 살고 있나 보다 싶어 안심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조를 청춘의 한 시기에 통과 의례처럼 거친 뒤 잊히는 인물이라고 하나 봐요. 불안정했던 청춘이 끝나면 요조 같은 인물을 나와 동일시하며 공감하기보다 타자화하며 비난하거나 측은해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내 자리가 옮겨가는 것도 같고요.


위선적이고 가식적이기만 한 인간을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또 단념할 수도 없다는 요조에게, 식욕도 없고 배고픔도 모르는 요조에게 이 연근 수프를 먹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슨 말을 할지 상상해 봤는데, 아마 기분 좋은 말을 듣지는 못할 것 같아요. 연근 수프 맛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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