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배우다.

책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by 유니

JTBC뉴스를 통해 이 사건을 접하던 날이 생각난다. 평상시처럼 퇴근해 저녁식사하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보도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며칠간 그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다. 잔잔하고 평온한 나의 일상에 누군가 돌 하나를 던져 긴 물수제비가 뜬 느낌이었다. 당시 이 사건을 나와 내 친구들은 일명 "안희정 쇼크"라 부르며 안주거리 삼았다. 잘 나가는 한 정치인의 성 스캔들, 그것도 여비서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같은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안주거리였다. 이 사건은 간만의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엄마, 안희정 뉴스 봤어?”

- “응, 아주 제대로 속았지. 그 피해자가 TV까지 나와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한 마디 한 마디 어렵게 인터뷰하는 모습이 너무 안 됐더라.”




김지은 씨는 인터뷰 당시 첫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고 말했다. 그렇다. 인터뷰의 답변은 다소 어지러웠다. '저 여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얘기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내용 중 안희정이 그녀에게 늘 이야기했다는 ‘네 의견을 달지 마라’, ‘네 생각을 말하지 마라’, ‘너는 나의 거울이다, 투명하게 비춰라’, ‘그림자처럼 살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저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을 넋두리처럼 뱉고 있는 김지은 씨가 혹시 어떤 종교적인 문제에 얽혀있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지은 씨의 증언이 다소 어지럽고 복잡해서 상황파악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가지 강한 느낌이 왔다. 증언하는 그녀의 태도, 목소리, 눈빛을 보며 ‘저 사람은 피해자가 확실하다!’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이 보도 이후 사건이 크게 공론화되었던 이유는 가해자가 유명 정치인이라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머, 저 여자 저건 진짜야!"라는 국민들의 공감도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런 느낌은 본능에서 비롯되는 인간적 교감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모습에서 진짜 피해자가 아니라면 보일 수 없는 진실성이 느껴졌다.



안희정. 2018년 전국의 희정이들을 분노케 한 희대의 이중인격자. 내 친구 희정이도 당시 같은 희정이로써 수치스럽다며 이 사건에 분노했었다. 한 때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명성을 날리며 젊은 지지층을 공략, 맹활약 펼친 덕에 나 역시 그의 정치신념, 공약 등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본 바 있다. 사건이 터지고 그래도 정치판에 몸 담은 세월 덕분(?)에 빠른 머리 회전을 했고, 빛과 같은 속도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정치판을 떠났는데 그래서인지 그 하락을 동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에 대한 충격이 가시자 피해자에 대해 가려졌던 의문을 제기했다. “피해자 다움”의 문제였다. 나 역시 기사나 댓글들을 접하고 그 의문에 공감하기도 했었다. 같은 여자로서 피해자 김지은 씨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여러 가지 루머의 사실관계는 차치하고 (1) 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않았을까?, (2) 어떻게 네 번의 지속적인 피해를 당하며 가해자를 보좌하고 섬기는 업무를 지속할 수 있었을까? 이런 의문을 통해 김지은 씨 역시 마음 한편으로 안희정에 대한 동경, 애증 더 넘어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 뭐 그런 게 존재했던 게 아닐까 생각했었다.


사실 나는 비서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기초지식이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비서라는 직업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한창 대학교 진학과 전공선택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한 친구가 비서과에 진학하고 싶다 말하자 나는 그 친구의 면전에서 대놓고 핀잔을 줬었다. 세상에 수 없이 많은 직업이 있는데 왜 주체적인 발전을 도모하지 않고 누군가의 보좌를 미래의 꿈으로 설정하느냐 탓했다. 비서란 정치인, 유명 기업인과 같은 주로 성공한 인물들을 보좌하는 역할인데 그들의 도움이 한 훌륭한 사람의 능력에 보탬이 되고 그것이 이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걸 연결 지어 생각하지 못했다. 이 책을 통해 비서라는 직업의 전문성과 그 어려움, 필요성에 대해 절감했다. 또한, 한 전직 비서의 탄원서는 비서라는 직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소위 "피해자 다움"의 문제를 대두시켜 그로 인해 특수한 상황에 처한 피해자 김지은 씨의 범행 이후 행동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품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오해였다.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 책을 읽는 첫 장부터 김지은 씨에게 안희정에 대한 사심 따위는 없었고 그녀는 온전한 피해자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저 누구보다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한 노동자였음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았다. 비서라는 직무에 대한 이해를 통해 피해자로서 그녀가 취한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사실 중년 남성과 젊은 여자 비서의 러브라인은 일반인들이 소설로 쓰기 정말 좋은 주제이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매우 일어나기 희박한 일이다. 50대 직장 상사에게 사랑을 느끼는 젊은 여성이 몇이나 될까? 설레려야 설렐 수 없는 상대다. 안희정은 세상의 모든 여자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근거 없는 자존감으로 끝까지 김지은 씨는 자신을 사랑한 것이라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여러 오해와 의심을 거두고 김지은 씨 상황에 나를 이입했다. 그녀는 앞서 내가 품은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도 이 책을 통해 낱낱이 해명했다. 같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그 고통을, 그 혐오를, 그 공포를, 그 상황을 공감했다.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책을 통해 안희정이란 사람의 이중성이, 정치인이란 사람들의 더러운 민낯이, 안희정의 지지자 및 주변인들의 추악함이 참 여러 형태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중 사건 관련 정말 충격적인 내용이 있었다. 안희정이 김지은 씨에게 마지막 범행을 저지른 날, 그는 미투운동을 보며 너의 아픔에 공감했다며 김지은 씨에게 사죄했다. 그리고 미투운동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그녀의 대답을 억지로 받아내고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다. 여기까지는 이미 언론에 잘 알려진 부분. 범행 직후 안희정은 김지은 씨에게 아침 일찍 와이프가 오기로 했으니 청소해 놓고 나가라 지시한다. 그 후, 스스로 옷가지를 추스른 김지은 씨가 침대 위, 근처를 테이프로 청소했고, 추정컨대 성관계 도중 침대 위로 떨어진 체모들을 정리한 것이라 생각된다. 골프채널을 시청하던 안희정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 보챘고 그 핀잔을 들은 김지은 씨는 놀란 마음에 부랴부랴 손에 쥐고 있던 쓰레기들을 자신의 가방에 쑤셔 넣고 오피스텔을 빠져나왔다. 이 대목, 성관계 직후 안희정의 "야, 끝났어, 얼른 치우고 나가!" 이 태도를 통해 그는 김지은 씨를 사랑하거나 애정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수 없이 관계 맺던 여자가 부재한 어느 밤, 가장 쉽게 자신이 부를 수 있는, 가장 쉽게 자신에게 복종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 욕정만 해결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얼마나 비참했을까, 나를 범한 늙고 추잡한 변태의 거시기털을 내 가방 안에 담아 오는 그 기분. 집에 와서 가방 속 체모들을 정리하고 몸을 씻어도 씻어도 씻기지 않는 그 더러움, 비참함을 느꼈을 피해자의 심정이, 이 부분이 너무 감정이입되어 피가 거꾸로 솟았다. 책 읽다 잠시 명상.


안희정은 참 인생 자체가 총체적 난국이었던 인물인데 그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자관계는 김지은 씨뿐만 아니라 여러 피해자가 나왔던 만큼 문란하고 또 더러웠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다른 피해자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 중지되었다.) 즉, 안희정이란 인물은 이 사건이 아니라 할지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폭탄이었다. 불륜 중인 여성이 있었으며 이 외에도 여러 주변 여성을 습관적으로 추행하고 희롱하고 범하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것이다. 안희정이 사용하던 오피스텔의 목적 또한 여성과의 관계를 위한 것이었는데 과연 안희정의 부인 민주원 씨가 정말 이런 남편의 여자문제를 몰랐을까? 남편과 김지은은 불륜 관계였다고 마지막까지 그리고 현재까지도 주장하고 있는 그녀 역시 참 추잡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이혼 안 하고 살 거라면 강간범보다는 불륜남을 선택하겠다는 그 선택지에 실소가 터진다. 내 남편은 불륜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며 끝까지 안희정 옆에서 자리 지키는 그 여자의 속내는 무엇일까? 남편을 위해서였을까? 자식을 위해? 그 행동은 틀렸다. 누구를 위해서든 틀렸다. 그럼에도 민주원 씨가 안희정이라는 이름 석자를 끼고 살아가며 얻는 이익들을 고려하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하던 그녀의 선택이겠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자니 쌩판 남인 내가 다 수치스럽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수치를 모른다. 수치도 모르는 사람은 천한 사람이라 했다.



이 책을 읽는 중 마침 그런 기사가 떴다. 안희정 비서 성폭행 사건이 터지고 약 2년이 지난 현재, 김지은 씨 측 증인들은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 모두 파면, 면직 처분되었고 그중에는 아예 한국을 떠난 사람도 있는 반면, 안희정 측 증인으로 소위 안희정 줄타기를 한 사람들은 안희정이 유죄로 인정되어도, 안희정이 징역을 가도, 파격 승진되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기사. 시대는 2020인데 정치판은 조선왕조시대와 다를 게 없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 직장, 내 생계, 내 가족 그 모든 걸 포기하고 한 동료를 위해 정의를 택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의를 포기하고 안희정 측에서 증언한 사람들도 일종의 피해자일 수 있겠다는 생각 든다. 이 모든 피해를 창조한 안희정 본인이야 당연히 자업자득이겠지만 그 속에서 부정을 선택한 이들도 금전적 이득은 취했을지언정 도덕적 루저가 되었으니 일종의 피해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루저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안희정 “덕분에”, 이 사건을 인생의 기회였다 생각할 한낱 기회주의자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을 떠나서부터 지금까지 타국에서 바라본 그간의 대한민국은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민주주의, 여성인권, 직장문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안건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정권 탄핵, 미투를 겪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회사에서는 2~30년 전 시대의 잔재로 남아있던 일명 "꼰대"들이 많이 청산되었다. 또, 비록 청산되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상사가 부하에게 커피 한 잔 타오라 시키는 것, 회식자리에서 강제로 술을 마시라 권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이 많이 자리 잡았고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고 노동착취를 일삼는 회사도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개혁의 문화가 이렇게 자리 잡아가는 시기에 그 개혁을 이끄는 주요 정치인, 침묵만으로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정치인이 대표적인 "꼰대"였다는 사실은 그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정치인의 활동무대인 정부지자체에서 각종 노동착취와 부조리가 횡행했다는 사실은 보고도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비로소 정치인 개개인의 태도와 그 정치인의 선거캠프, 각 지자체의 분위기도 달라지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당시 이미지 좋던 안희정. 정치판에서는 보기 드문 얄쌍, 날씬, 키 큰, 젠틀, 젊은 정치인이었다. 당시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심지어 와이프와 함께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부부예능에 출연해 능력도 있는데 자상하기까지 한 슈퍼 퍼펙트 인간 역할의 메소드 연기도 보여줬다. 좋은 인상의 정치인이라 생각했던 박원순도 그렇고 이 사건들을 보며 다시 한번 사람 얼굴로 판단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람의 주변인을 관찰하는 것, 그게 정답이라 하겠다. 안희정, 주변인이 온통 “대의”라는 명분 하에 부정부패를 수치 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었으니 오늘날 이런 추락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는 김지은 씨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녀의 얼굴이 어땠더라? 그녀는 어디 살까? 그녀는 왜 이혼했을까? 내가 뭐라고, 그녀에게 직접 연락해서 위로하고 타국으로 나가고 싶다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와서 편히 쉬라고 제안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 3자로써 가지는 이런 단순한 호기심이 그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생각은 막을 수 없었지만 찾아보거나 알아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내가 검색하면 그 검색어는 또 카운트가 될 것이고 그것은 그녀의 가슴에 또 하나의 생채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녀는 지난 시간 이 사건을 통해 너무나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책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또, 보내고 있는지를 느끼고 나 자신에게도 많은 채찍질을 했다. 그래서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다. 나 자신의 성찰과 반성을 동반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안주거리 삼은 점, 비서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점, 피해자인 그녀를 오해한 점, 여전히 그녀에 대해 궁금해하는 내 모습 그 모두가 잘못이었다.


지금도 이 사건과 관련해서 너무도 많은 분열과 오해가 있다. 심지어 이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부정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들과 어떻게 정상적인 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지 그것은 영원한 숙제다. 내가 그들을 설득할 명분은 없을지 몰라도 나 역시 작은 용기를 내고 싶었다. 설령 내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지라도 김지은 씨는 잘못한 게 없다고, 가해자인 안희정이 잘못한 것이 맞다고 나의 소신을 용기 내 말하고 싶었다. 사실을 말하는 것에 왜 용기가 필요한지는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김지은 씨 증인 중 한 분은 김지은을 돕는 것이 내 자아를 지키고 내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내게 깊은 울림이 되었지만 이 당연한 말이 왜 어려워야 하고 뜻깊은 일이 되어야 하는지 역시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라도 김지은 씨가 이 글을 읽고 있다면 꼭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김지은 씨 편에서 나와 같은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비방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전체의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하는 사람들 중에는 오히려 댓글 한 번 적어본 적 없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세상이다. 김지은 씨를 온전한 피해자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녀가 용기 내어 세상을 바꾸는 일에 힘을 보태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그녀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이다. 김지은 씨가 내어준 용기, 그 용기 중 하나인 이 책을 출판하기로 결심한 행동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도 세상에 목소리를 보태는 용기를 배운다. 이것이 그녀가 말한 고통으로 인한 해체, 죽음이 아닌 새로운 탄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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