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 (Marriage Story, 2019)> 를 보고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결혼을 꿈꾼다. 환상이 없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가 이혼의 주인공이 될거라는 생각은 못한 채 결혼한다. 흔히 농담처럼 "살다가 안맞으면 이혼하지 뭐~"라고 얘기하지만 사실 이혼이란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혼 스트레스 지수에 대한 연구 결과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는 스트레스 중 '사망'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가장 정신적 충격을 주는 사건은 바로 '이혼'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공공연하게 들리는 불행한 결혼 생활, 이혼에 대해서는 크게 염려치 않고 결혼을 꿈꾼다. 나는 아닐거라는 안일한 착각. 이 영화는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해 아이를 출산한 후 이혼으로 향하는 과정을 매우 현실적이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나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정말 오랜만에 후유증이 심한 영화를 보고 미래의 내 결혼생활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되어 이렇게 후기를 적어본다. "결혼 이야기".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두 남녀는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으며 아이를 낳았다. 약 10년간의 결혼 생활 끝에 그들은 이혼을 결심했고 이혼 전문 상담가를 찾아가 이혼으로 가는 첫번째 관문 '서로의 장점을 적어 읽어주기'로 영화는 시작한다.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됐는지, 왜 결혼을 결심했는지, 왜 지금까지 함께 살았는지를 낭독하는 이 자리에서 니콜은 불편하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두 사람은 이혼하기로 합의했지만 변호사없이 최대한 원만한 합의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 서로가 원하는 마무리를 짓기 위해 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만날 때는 조건없이 사랑에 빠져 시작했지만 법적으로 부부생활을 종료하는 일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니콜은 LA에서 아들 헨리와 생활하기 위해 결국 변호사를 고용해 찰리에 대한 소장을 제출하게 된다. 원만한 이별을 원했던 찰리는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본인도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고용해 법정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극 초반 니콜이 변호사를 찾아가 눈물지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 털어놓는 장면이 있다. 스칼렛 요한슨의 연기도 좋았고 연애나 결혼을 실패한 웬만한 여자들이 한번쯤은 경험할 만한 이야기로 많은 여자들의 공감을 자아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도 역시나 매우 공감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도 이 장면처럼 누군가에게 니콜과 비슷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눈물지었던 때가 있었다. 니콜은 결혼 생활 내내 배우자에게 맞춰야 했고 존중받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나를 희생해야 하는 불만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이제 와서 나의 삶을 다시 되찾으려고 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는 식어버린 사랑이라고 모든 걸 인정하는 니콜. 이별을 직감하고 이별을 결심하고 하루하루 이별을 체감하고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던 그녀는 티 내지 않은 채 홀로 그 모든 슬픔을 감내하며 일상을 보낸다. 여느때처럼 찰리와 굿나잇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별을 대하는 감정에 이입됐다. 찰리는 이혼소장을 받고 나서야 이혼을 현실적으로 직시했지만 니콜은 이미 이전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것을 느끼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일상을 살아갈 때 여자가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형사사건 변호사는 악한 사람의 최선을 보고, 이혼사건 변호사는 선한 사람의 최악을 봅니다.
찰리 변호사의 대사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혼 소송에서 금전, 양육에 대해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내려면 재판 과정에서 최대한 상대의 단점을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평상시 음주나 가무를 즐기지 않는지, 아이의 안전과 교육에 얼마나 관여하는지, 육아는 어느정도 분담하는지, 아이의 정서발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가정 경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등 일상 생활 속 작은 말 한마디, 태도 모두가 상대의 공격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니콜이 저녁 먹으며 곁들인 와인으로 인해 계단을 내려오다 살짝 휘청한 것은 평상시 술을 일삼는 엄마라고 포장되어 공격받았고, 찰리가 렌트카에 아들을 위한 카시트를 고정해오지 않은 작은 실수도 아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아빠라고 포장되어 공격받았다. 영화 속에서 변호사들의 입을 통해 이런 날선 인신공격성 공방이 오고 갈 때, 두 배우의 얼굴을 교차 포커싱하며 비춰주는 연출 장면은 이혼 당사자들의 복잡한 심경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니콜과 찰리는 애초에 서로의 재산에는 조금도 욕심내지 않으며 상식적이고 원만한 합의를 원했다. 하지만, 양육권을 유리하게 쟁취하기 위해 서로의 사소한 실수를 공격하며 본질을 흐렸고,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이혼소송 과정을 겪으며 상대에 대해 더 큰 실망과 심리적 상처를 입게 된다.
이별에는 준비와 과정이 필요하다. 그 관계가 쌓여진 시간만큼 그리고 그 깊이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배우자나 연인을 정리하는 과정이 순탄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익숙함'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 한 예능프로에서 10년을 사귄 연인이 서로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나눴다는 걸 듣고 웃었던 적이 있다. 세상에는 한번에 깔끔히 절연할 수 없는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 니콜과 찰리 역시 이혼하기로 협의하고 소송은 진행 중이었지만 이들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부부사이이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같은 생활패턴 그리고 서로의 습관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관계이다. 대질심문 중 식사시간이 다가와 메뉴를 고르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찰리를 위해 니콜이 그의 취향의 음식을 대신 주문해주는가 하면, 니콜은 찰리의 덥수룩한 머리를 보고 직접 이발을 해주고, 아이를 안고 떠나는 찰리의 신발끈이 풀렸을 때도 몸을 숚여 대신 묶어준다. 감정이 격해져 싸울 때도 습관처럼 "허니(자기야)"라는 말이 튀어 나간다. 절전때문에 니콜 집의 대문이 자동으로 닫히지 앉자 이를 도와주러 온 찰리가 니콜과 함께 커다란 철문을 함께 밀어 닫는 모습은 두 사람이 익숙해진 서로의 관계를 최선을 다해 단절하려는 모습이 투영된 훌륭한 연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대문이 완전히 쾅 닫히기 직전 서로가 눈을 마주치는 장면에서 이제 드디어, 이게 우리의 마지막이라는 두 사람의 메세지가 보였다.
1차 공판을 마치고 두 사람은 재판 중 입은 마음의 생채기를 경험하며 변호사없이 둘 사이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니콜이 찰리를 찾아간 장면은 처절하게 다투고 이별하는 남녀의 모든 감정을 집약해 보여준다. 두 사람은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 서로 동의하고 합의하기 위해 마주 앉았지만 결국 서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다시 언성이 높아졌다. 서로에 대한 이해나 공감은 전혀 없었고 상대를 이기적이라 깎아내리기 바빴다. 결국 "애초부터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너와의 결혼생활은 불행했어.", "넌 너의 아빠를 닮아서 그래.", "너는 최악이야.", "재수없어.", "너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저주를 퍼붓게 된다. 한 때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지금은 내 모든 걸 걸고 저주하게 된 그 사람. 토하듯 상대에 대한 거침없는 저주를 쏟아붓고 그 말을 뱉은 내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주저 앉아 울부짖는 두 사람을 보며 나 역시 참 많이 울었다. 이 장면에서 감독은 두 사람이 대화를 시작할 때는 전신을 비추며 촬영하다가 두 부부의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을수록 배우의 얼굴을 더욱 가까이에서 줌인하는 연출을 한다. 그 때 잔뜩 침을 튀겨 가며 갖은 인상을 찌푸리고 서로에게 저주를 퍼붓는 두 배우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아름다운 사랑의 결말이 이런 추함이라니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서로 사랑해서 시작했지만 그 끝은 상대에 대한 처절한 증오. 그 갈등의 시작은 매우 소소했다. 사소한 실수나 행동이 마음에 쌓여 실망과 분노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는 사소했던 그 모든 사건들이 테이블 위로 소환되어 상대를 물어 뜯고 할퀴는 도구로 이용된다. 여기서부터 실망과 상처는 눈덩이처럼 겉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이어지는 서로에 대한 인신공격, 상대의 치부를 들추고 상대에 대한 저주로 치닫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거치는 두 사람의 갈등 장면은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이다. 이 장면을 보며 너무나도 내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 보는 것 같은 마음에 답답한 가슴을 여러번 두드려야 했다. 이런 다툼을 할 때면 나는 내 자신이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찰리처럼 상대가 죽기를 바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그 모멸감의 끝은 언제나 내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몇 일을 죽은 시체처럼 초첨없는 눈빛으로 지새워야 했으며 내가 이거밖에 안되는 사람이란 생각에 깊은 어둠 속을 헤매어야 했다. 나 자신을 갉아먹는 관계는 틀렸다고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그런 관계는 애초부터 상대와 내가 맞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됐을까, 혹은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태도에 의해 비롯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해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속에는 이 영화도 포함된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 중 반드시 언급해야 할 또 하나의 인물이 있다. 바로 찰리와 니콜의 아들 '헨리'. 8살의 나이에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는 역할이다. 두 사람의 이혼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고 갈등으로 치닫는 원인이 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는 헨리가 부모의 이혼에 대해 슬퍼하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은 비춰지지 않는다. 그는 그저 해맑고 장난끼 많으며 무덤덤하게 엄마와 보내는 시간,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따로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영화 속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헨리가 부모의 불행을 느끼고 슬퍼했을 거라 생각한다. 8살이라면 충분히 인지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우리반에는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가 있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이혼이 뭔지 잘 몰랐지만 그 친구는 왠지 모르게 어둡고 우울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 중 한 명과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면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아무리 이혼 가정 자녀가 많은 시대라고 하지만, 부모의 삶은 별개라고도 하지만, 이혼이란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임에 분명하다.
아이를 출산 후 그 감정을 공유해 준 친구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와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것,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감을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아마 내가 경험한 이별이 절대로 영화 속 이별과 깊이가 같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자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부 사이에 자녀가 생기면 아무리 이혼을 한다 한들 평생 엮일 수 밖에 없는 인연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자녀가 없는 이혼, 자녀가 있는 이혼이 다른 이유다.
영화에서는 결국 이혼의 귀책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 명료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각자가 처한 상황 속에서 겪는 이혼과정이 얼마나 순탄치 않은지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굳이 여기서 이 이혼에 대한 잘잘못을 따져보고 싶다. 두 부부의 애정문제, 처음부터 끝까지 싸웠던 거주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하고 찰리의 외도는 니콜의 마음이 굳어지는 결정적인 계기였다. 니콜은 두 사람의 관계를 노력해보려 했지만 찰리의 외도 사실을 알고 이혼을 결심한다. 찰리가 단 한 번 뿐이었다고, 그것은 오랜 시간 네가 잠자리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고 적반하장으로 화내며 변명하는 모습은 치졸해 보였다. 또한, 찰리는 본인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희생하던 니콜의 마음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마지막 대화에서 니콜이 자신이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느냐 물었을 때 찰리는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고 넌 줄곧 행복하게 살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불행해졌다 주장하는 것이라 니콜의 마음을 제 멋대로 치부했다. 니콜이 변호사에게 눈물로 상담할 때 자신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헤아려 줬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하는 장면이 있다. 찰리가 니콜을 조금만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그녀의 마음을 공감했다면 적어도 두 부부는 이혼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사실을 내포하는 장면일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니콜과 찰리는 각자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노래를 부른다. 니콜은 엄마, 언니와 함께 밝고 행복한 노래를 부르며 새 출발과 희망을 노래한다. 하지만, 찰리는 어둡고 슬픈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단연 니콜과 찰리가 격정적으로 다투며 서로를 증오하던 장면이다. 말로써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상대에게 입히며 그들의 관계는 일말의 가능성마저 사라져버렸다. 상대를 공감하는 것 VS 말을 예쁘게 하는 것, 어떤게 더 쉬운 것일까? 나는 말을 예쁘게 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라 생각한다. 어떤 결혼 생활이 될지는 3년 안에 결판난다는 말이 있다. 15년차까지 행복하게 잘 살다가 갑자기 20년차부터 불행해지는 부부는 드물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짧으면 1년, 길면 3년 안에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해답은 말투에 있다. 소소하게 짜증내는 말투, 상대를 비하하는 언어, 부정적인 대답, 틱틱 거리기, 저주하기, 증오하기, 비교하기, 언성 높이기 등 사람들은 흔히 가까운 사이에 그럴수도 있지, 라며 가볍게 넘기지만 사실 이런 실수는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게 만큼은 그 누구보다 주의 기울여야 하는 부분이다. 이런 것들이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편안함과 익숙함으로 포장되어 터져 나오기 시작하면 그 상처는 마음에 쌓여 가고 애초 소소한 갈등으로 시작한 다툼이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갈등으로 이어지며 파국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혹은 남은 결혼생활을 불행한 채로 평생 보내게 될 것이다. 결혼이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내가 과거 부모, 형제와 살던 것처럼 그냥 편하게 함께 살면 되는 간단한 과정이 아니다. 부단히 인내하고 나 자신을 다듬으며 내적성찰과 성장을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결혼한 남녀는 의식적으로라도 서로의 말투를 아름답게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 또한, 결혼할 사람을 선택할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의 말버릇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짜증나고 화나는 상황 속에서도 예쁘고 다정한 말이 오간다면 갈등은 비교적 쉽게 봉합될 것이며 마음에 남지 않고 쉽게 잊혀질 것이다.
모두가 그렇듯 어린 나이의 사랑은 미성숙하다. 여자라면, 어느날 불쑥 내 삶에 들어와 나를 좋다고 말해주는 남자를 만나 대접받으며 황홀한 연애를 경험한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랑을 받으며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덧 사랑받는 것에 익숙해지고 그것들이 당연해지고 때로는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 일인지 조차 망각하며 자만하는 시간도 경험한다. 20대 때 나는 오롯이 나만 바라봐주는 관계에 집착했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그냥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30대가 되고 연애와 이별, 연애와 이별을 거쳐 나의 가치관은 변하고 성숙해졌다. 인간의 삶에서 관계라는 것은 연인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그 안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도 존재한다. 그 다양한 인연과의 '사랑 밸런스'가 균등하게 나눠질 때 비로소 이상적인 사랑의 완성을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 한 사람과만 나누려 하다 보면 상대는 너무 지치고 힘들 수 밖에 없어 언젠가는 나를 떠나게 된다. 따라서, 내가 가지고 있는,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여러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연인 뿐만 아니라 가족, 친구, 동료 기타 다른 사람들과 밸런스 좋게 나눈다면 그 누구도 힘들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내 연인, 내 배우자에게는 그 중 가장 우선 순위와 이해, 배려를 주면 되는 것이다. 관계에서 갈등은 있을 수 있고 있는 것이 당연하기에 인간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과정 속에서 상대를 해치지 않는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고 상대의 마음을 보살피며 존중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가 부른 노래 "Being Alive"의 가사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가 마지막까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던 바로 그 가사. 내 미래의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까? 아마 그는 나를 아주 사랑하고 때로는 나를 아주 힘들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때로는 나를 으스러질듯 안아줄 것이며, 때로는 내 모든 것을 앗아갈듯 뒤흔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 삶의 모습이며, 그럼에도 사는 것이 결혼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혼자 산다는 것, 타인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삶은 그냥 혼자 사는 것일 뿐이니까.
Someone to hold you too close
너를 꼭 안아주는 사람
Someone to hurt you too deep
너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Someone to sit in your chair and ruin your sleep
의자에 앉아 너의 잠을 방해하는 사람
Someone to need you too much
너를 너무나 필요로 하는 사람
Someone to know you too well
너를 너무 잘 아는 사람
Someone to pull you up short and put you through hell
너를 지옥으로 이끌 사람
Someone you have to let in
너를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
Someone whose feelings you spare
너를 아껴주는 사람
Someone who, like it or not
좋던 싫던 간에
Will want you to share
너와 모든 걸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
A little, a lot
사소한 것 하나 하나
Someone to crowd me with love
나를 사랑으로 채워줄 사람
Someone to force you to care
너의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Someone to make you come through
너가 모든 걸 이겨내게 하는 사람
I will always be there
난 언제나 거기 있을거야
As frightened as you of being alive
너만큼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사람
Being alive
산다는 것
Being alive
산다는 것
Somebody hold me too close
나를 꼭 안아줄 사람
Somebody hurt me too deep
내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Somebody sit in my chair and ruin my sleep
의자에 앉아 나의 잠을 방해하는 사람
And make me aware of being alive
살아있음을 일깨워 줘
Being alive
살아있음을
Being alive
살아있음을
Somebody need me too much
나를 너무나 필요로 하는 누군가
Somebody know me too well
나를 너무 잘 아는 누군가
Somebody pull me up short and put me through hell
나를 지옥으로 이끌 누군가
And give me support for being alive
내가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사람
Make me alive
나를 살아가게 해
Make me alive
나를 살아가게 해
Make me confused
날 혼란하게 하는 사람
Mock me with praise, Let me be used
나를 칭찬하고 나를 이용하는 사람
Vary my days
내 일상을 뒤집고
But alone is alone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뿐
Not alive
살아있는 게 아니야
Someone to crowd me with love
나를 사랑으로 채워줄 사람
Someone to force me to care
내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
Someone to make me come through
모든 걸 이겨내게 하는 사람
I will always be there
난 언제나 거기 있을거야
As frightened as you
너만큼이나 살아가는 것이 두려운
To help us survive for being alive
살아가게 도와주는
Being alive
살아가자
Being alive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