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할머니 요양원에 보낼 생각은 없어?

- 나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

by 구나공


우리 엄마는 시집 와서 10년을 넘게 친할머니를 모셨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치매를 앓으셨다. 어렸던 나에게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사건들이 한 두개가 아닌걸 보면 엄마에게 결코 쉬운 시간들이 아니었음을 그 땐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이번엔 외할머니를 엄마가 모시게 됐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이동범위는 거실 중앙에 펼쳐진 이불을 벗어나지 못한다. 밥도 화장실 볼일도 그자리 안이다. 그래서 엄마의 시간은 늘 할머니에게 맞춰져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고사하고 손자 보러 부산에 오는 것도 큰 맘 먹지 않으면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휴가를 내고 친정집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그런 엄마를 보고 있자니 문득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자식들 다 키워두고 이제는 누구 엄마 말고 그냥 최미옥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 좀 누리면서 살아 갔음 좋겠는데 여전히 엄마의 시간은 온전히 엄마의 것이 아닌게 속상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해서 그냥 툭 한 번 물어봤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 요양원에 보낼 생각은 없어?"


그랬더니 돌아오는 우리 엄마의 덤덤한 대답에 내가 감히 무슨 질문을 한 건지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엄마는 그럴 생각이 없다고 했다.


하고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병원에 가야할 정도로 엄청 심한 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라며.

너희 어릴 때 할머니가 엄마를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 말했다. 너 지금 아기 키우면서 항상 니 시간 없다고 투덜거리지 않느냐, 엄마가 너희 키울 때 엄마의 시간을 만들어준 유일한 사람이 할머니였다고 했다. 게다가 할머니도 그 힘든 시간들을 다 바쳐 엄마를 키워줬으니 할머니가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가 할머니를 돌보는 건 당연한 거라고 했다.


아...너무 부끄러워서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엄마가 '요양원은 시설이 안 좋다. 남의 손에는 못 맡긴다.' 라고 얘기 했었으면 아니다, 요즘 좋은 요양원 많다. 오히려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반박해보려 했다. 그런데 엄마의 대답을 듣고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니 내가 한 질문 자체가 엄마를 위한다는 되도 않는 명분 아래 순전히 고생하는 엄마를 보는게 속상한 내 마음 좀 나아지자고 내뱉어버린 아주 이기적인 자기위로였을 뿐이었다. 정작 엄마 본인의 마음은 어떤지 읽어볼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질러버린 것이다. 그저 내 기준에 맞춰 엄마의 시간을 판단하고 동정하려 했다.


애 낳아 키우면서 내 시간이 있네 없네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면서 우리 엄마도, 우리 할머니도 나와 똑같았을, 아니 어린이집이고 육아 용품이고 없던 그 시절엔 더 고되었을 거라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내가 그렇게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들에게도 정말 소중했을 거라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그 시간들을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의 대답에 뒷통수를 제대로 맞아 아무말도 못하고 있으니 엄마가 이런게 사람 사는 인생이고 삶이라며


엄마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했다.


다음날 방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오늘 엄마 예쁘다고 웃어보라며 사진 찍어주는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나가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았다. 너무 슬프고도 아름다운 엄마와 딸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마 평생을 갈고 닦아도 우리 엄마같은 엄마도, 우리 엄마같은 딸도 못 되겠지만 우리 엄마 같은 엄마를 엄마로 만나서 그나마 조금 더 나은 딸이, 또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사랑해요 엄마. 그리고 엄마가 엄마의 엄마와 보내는 그 시간들이 꼭 행복하길 바라요.


나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