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22
텔레비전을 즐겨보지 않는 나에게도
본방을 애타게 기다렸던 드라마가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응답하라 시리즈다.
지난날의 향수에 흠뻑 젖어 마음껏 울고 웃을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드라마였다.
요즘 다시 보기를 시작했는데 몇 번을 봐도
또 웃고 또 울게 되는 참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떤 글을 써볼까 하다 88년은 태어나기 전이니 나의 어린시절이었던 1998년은 어땠나 떠올려봤다.
우리 집은 가구수가 몇 되지 않는, 바다 가까이의 작은 동네에 있었다. 중앙에 교회와 놀이터, 노인정이 있었고 그 주위로 집들이 있었다. 동네에 사는 어린이들은 다 학교 친구들이었고 윗집 옆집 할 거 없이 누가 사는지 알고 지냈었다. 몇 명의 가족이 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정도는 기본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동네 가로등 켜고 끄기였다. 가로등을 끄고 켰다고? 라며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가로등에 달린 두꺼비집 같은 걸 열어서 스위치를 올려야 가로등이 켜졌다. 나도 언제까지 그 일을 했었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저녁 먹을 시간쯤이면 항상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가로등을 켰던 기억이 난다.
아침이면 동네 끝쪽에 사는 남희가 내 이름을 부르며 우리 집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은 아침밥을 먹는 나를 기다렸다 함께 학교에 갔다. 하굣길엔 집 앞 놀이터에서 동네 친구들이 다 모여 온갖 놀이를 다 하며 놀았다. 노인정 지붕 위를 달리다 호되게 혼나기도 했고 놀이터 한 바퀴를 돌며 한 발 두 발도 하고, 줄넘기, 고무줄놀이, 요즘에는 교과서 한 켠에서나 볼 법한 놀이들을 해가 질 때까지 하곤 했다. 그러다 저녁시간이 되면 드라마에 나오듯 각 집의 엄마들이 ‘저녁 먹어~’ 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놀이터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으로 흩어졌다가 다음날 다시 모여 놀았다.
부모님이 장사를 시작하신 뒤로는 저녁 동냥을 다녔다. 물론 집에서 차려 먹기도 했지만 집에 밥이 떨어진 날에는 동네에 하나 있는 민정이네 슈퍼에 갔다. 아줌마가 저녁밥을 하시는 동안 슈퍼 카운터를 봐주기도 하고 몰래 과자를 훔쳐(?) 먹기도 했다. 민정이는 엄마가 땋아준 내 긴 머리를 부러워했는데 훔쳐먹은 과자값 대신 민정이의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곤 했다. 어떤 날은 민정이네 집에서, 또 어떤 날 은 달래네 집에서 저녁을 때웠다. 우리 집 사정을 아는 아줌마들이 늘 살갑게 나를 챙겨주셨다.
동네에 시장이 하나 있는데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라 시장 상인들이 다들 엄마 아빠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다. 그중에서도 식육점을 하던 이모 삼촌네와 아주 가깝게 지냈었다. 우리 집 강아지 특식은 늘 식육점 족발뼈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을 땐 식육점에 가면 엄마를 찾을 수 있었다.
오빠가 다니던 중학교가 우리 집 바로 뒤라 학교가 끝나면 오빠 친구들이 모두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시간을 때우다 학원을 가거나 집에 가거나 했다. 초등학생이던 내가 먼저 학교를 마치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김없이 ‘소길아~ 놀자~’ 하는 소리와 함께 대여섯 명의 오빠들이 왔었다. 어린 내 눈엔 어찌나 멋져 보였 던 지 내 첫사랑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오빠 중학교 뒤로는 작은 산이 하나 있었는데 친구들이랑 강아지 한 마리 데리고 모험을 떠난답시고 산으로 갔다 길을 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기 때문에 자주 바다에 나가 놀았다. 나뭇잎 화석을 찾아서 내 화석이 오래됐는지 니 화석이 오래됐는지 겨누어보기도 하고 돌 틈 사이에서 꽃게 잡기도 즐겨했다. 방파제 위를 걸어 다니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바다 모래를 한 움큼 주워다 물에 섞어 동그랗게 만들어 햇빛에 말리면 천연 지우개가 되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아마 그 절벽의 질퍽질퍽했던 모래의 성분이 뭔가 있었기 때문이겠지.
윗집에서 반찬이 내려오면 우리 집에서도 그릇 가득 반찬을 올려 보냈고 윗집 이모가 늦는 날이면 윗집에 살던 오빠랑 남동생이 우리 집으로 하교해서 밥 먹고 놀다 올라가곤 했다. 나도 윗집에 놀러 가는 걸 좋아했는데, 우리 집엔 없던 핑구 비디오를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적고 보니 그때가 참 그립다.
풍족하진 않았지만 사람들 간의 유대가 훨씬 끈끈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 단어 자체가 무색해진 ‘이웃사촌’이 그때는 진짜 말 그대로 이웃에 사는 사촌, 말하자면 가족 같은 사이었다. 이웃의 일에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말하지 않아도 서로 도우며 사는 게 너무나도 당연했던 때였다.
요즘같이 사람 간의 접촉과 교류가 제한되는 시기에 한 동네가 한 가족 같았던 그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마음 한편이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나는 그 시절의 그 기분을 느껴봤다는 것만으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은 삶의 모습인데, 언젠가 다시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