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23
어젯밤 읽었던 시집에서
내 인생에 두고두고 곱씹어 읽을 시를 하나
찾았다.
반성 16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거짓말을 그 무엇보다 싫어하지만 본의 아니게 지나고 보면 늘 거짓말이 되어있는 말이 있다.
‘나 이제 진짜 술 끊는다.’
‘정말이야, 이제 나 술 안 먹어.’
불과 이틀 전에도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나 다시는 술 안 먹을 거야.’
그날도 전날 밤 친구와 따지 말았어야 할 세 번째 와인병을 다 마신 뒤 엄청난 숙취로 아침을 잃어가던 중이었다.
인간은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라는 철학적 물음에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음주’다.
그렇다고 매일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중독에 빠진 건 아니다. 다만 이따금씩 이렇게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나를 마시는 건지 모르는 날들을 벌써 십 년째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팔팔했던 대학생 시절엔 더 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 해장국과 함께 해장술도 한 잔 하고 일교시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가 수업 시작 전까지 자고 있으면 아침 청소를 하러 오신 이모가 나를 깨워 주곤 했다.
술만 마시면 땅바닥은 내 집 안방이오 하늘은 나를 덮어주는 따뜻한 이불이었다. 어디서든 잘 자는 고마운 내 성격은 술이 반 만들어줬다고 할 수 있겠다.
약간의 알딸딸함에 없던 자신감도 생겨나는 것 마냥 술자리에서 만큼은 우리는 모두 친구 모드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술잔을 부딪혔다.
덕분에 어느 술자리에서도 환영받는 인물이었고 그런 내 모습을 스스로도 꽤나 즐겼다.
왜 그렇게 술을 마셨냐고 물으면 딱히 이유를 말하기가 어렵다. 사실 우리나라 대학생들 중에 이유가 있어 술을 마신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그땐 그게 마치 대학생활에 꽃인 줄로만 알았다.
아,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어느 유명한 드라마의 한 소절을 빗대어 말할 수 있겠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술 마시기에.
그땐 젊음의 열정으로 그랬다고 한다지만 우리 엄마 말처럼 ‘엄마가 되어가지고 어찌 또 그러고 사냐’ 싶은 날들을 왜 여전히 반복하며 살고 있을까.
육아에 지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일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호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한 아쉬움일까.
매번 그렇게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다음날이면 쓰린 속을 붙잡고 후회하면서 올해도 이렇게 같은 실수를 하고 또 반성을 하고 있다.
이번에 던진 말은 진짜라며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새겨보지만 6년 전 친구들과의 카톡 공지방에 올린 글을 보면 이미 그때 난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음주와 반성의 연속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