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32
가스레인지 대청소를 했던 날.
어떤 때라도 다 벗겨내 준다는 스프레이 세제를 구입한 기념으로 벼루고 또 벼론 가스레인지 청소를 하기로 했다.
받침대, 삼발이 모두 걷어내고 세제를 뿌리고 솔로 닦아 내는데 생각처럼 쉽게 벗겨지지 않았다. 앞에 두 구는 얼룩만 좀 있던 터라 그럭저럭 본모습을 찾은 듯했으나 뒤에 있던 점화구 밑은 원래 검정색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게 다 캐캐 묵은 얼룩들이 쌓여 단단히 굳어진 것이었다. 대체 이 얼룩들은 언제 어떻게 생긴 건지 감도 안 잡힌다. 삼겹살이었는지 된장국이었는지. 분명 광고에선 금세 반짝반짝 새것처럼 빛 났었는데 끝끝내 뒷 화구는 여전히 곳곳이 검은 얼룩이다.
아...
고작 가스레인지 네 구 청소하는데 세제 한 통을 다 쓰고 필라테스로 모은 내 팔근육도 다 써버렸다.
큰 맘먹고 대청소 깔끔히 했으니 이젠 진짜 정말 흘리자마자 청소하리라 마음먹은 그날 저녁, 깨끗한 가스레인지로 된장국을 끓였는데 살짝 넘쳤다. 안돼! 바로 닦아야지! 생각이 들자마자 냄비를 옮기고 삼발이를 들다가 앗 뜨거워! 손이 대일 뻔했다.
참나.. 가지가지한다 싶었다.
너와 나 사이도 그렇다.
갈등이 생겨 상처가 될 것 같을 땐 그때 그때 풀어야 한다. 그렇지만 문제가 생긴 그 즉시 풀려하면 아직 그 열이 식지 않은 가스레인지 삼발이처럼 격해져 있는 감정에 괜히 화만 더 키우게 된다.
또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에이 몰라하고 지나치거나 다음에 해야지 하고 넘기면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 검은 얼룩이 굳어진다. 그렇게 짙어진 상처는 아무리 좋은 극약을 써서 지우려 해도 다시 처음으로 돌려놓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얼룩이 왜 생겼는지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다음엔 뭘 조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다시 또 같은 이유로 검은 얼룩을 쌓아가기 일쑤다.
가스레인지 청소도, 너와 나 사이의 감정 청소도 너무 급하지는 않게 한 김이 식고 난 후에, 그렇지만 검게 굳어지기 전에 꼭 해줘야 한다.
그래야 세제값도 아끼고 내 감정소비도 막고 적은 힘으로 처음의 반짝반짝했던 그 상태로 돌아가기 쉬워진다.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너의 말투에 상했던 내 감정은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오늘 저녁 즈음 맛있는 한 끼를 함께 먹고 난 후에 털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 아침엔 다시 반짝반짝 깨끗한 마음으로 너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