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불편하게 삽니다

DAY_40

by 구나공



우리집은 매일 저녁 설거지 이후 다음 날 먹을 보리차를 끓인다. 여보도 나도 어릴 적부터 늘 끓인 물을 먹으며 자라서인지 식당을 고를 때도 보리차를 내어주는 곳을 선호한다. 매일 끓여내야 하고 요즘같이 날이 더워지면 금세 상하기 때문에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덕분에 아이도 물을 잘 먹어주고 우리도 물 먹을 때마다 맛있다는 생각에 갈증 해소와 더불어 작은 기쁨을 느낀다.


집 앞에 서는 마을 버스를 타면 5분도 안걸려 도착할 거리를 조금 더 걸려 걸어서 출근한다. 비가 오는 날이나 너무 덥거나 추운 날에는 강한 유혹을 느끼기도 하지만 매일 아침 15분의 걷는 시간동안 하루를 계획하기도 하고 아이가 있어 자주 들을 수 없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도 하고, 라디오로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배우기도 한다.


브런치 이외의 모든 SNS를 차단 한 뒤로 통 주변 사람들의 근황을 모르고 산다. 벌써 6개월이 지나가다보니 친한 친구들에게서 먼저 안부 인사가 오곤 하는데 그 순간이 SNS에서 매일 받아보던 가벼운 댓글보다 훨씬 반갑게 느껴진다. 단 5초만 틈이 나도 핸드폰을 열고 별나라를 찾아보던 그 때에 비하면 훨씬 시간적 여유가 생긴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느라 내 삶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었는데 요즘은 어느때보다 나와 나의 삶을 돌보는 일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브런치에도 매일 글을 남기지만 매일 손으로 짧은 기록을 남긴다. 가끔 귀찮기도 하지만 연필을 잡고 책상에 앉아 지면에 무언가를 적어내려가는 느낌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안정감을 가져다 준다. 브런치에는 담아내지 못했던 사소한 지난 날의 기록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요즘엔, 내가 원하지 않아도, 이미 모든 것이 너무나도 편리하게 잘 갖춰져 있다.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손에 꼽을 정도고, 어디든 모르는 길이라도 손가락만 움직이면 알아서 길을 안내해주고, 설거지며 빨래, 이젠 전등을 끄고 켜는 일마저 나는 누워있기만 하면 기계들이 다 해주는 세상이다. 이러한 편리의 풍족에 빠져 살다보면 가끔 앞으로 나라는 인간은 어디에 어떻게 쓸모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벌써 이해할 수 없는, 적응하기엔 너무 빨리 변해버리는 기술의 발전에 나는 한참 뒤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의식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내가 꼭 유지해 가고 싶은 나의 삶의 모습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지켜나가고 싶다. 그래야 내가 나를 지켜가며 이 폭풍같은 변화에 나의 속도로 맞추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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