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45
얼마 전에 아는 분께서 아이에게 읽혀주던 책이라며 전래동화 전집을 전해주셨다.
전래동화는 지금 우리 아이 나이대(5-7세)에 읽어줘야 하는 필독서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흔쾌히 집에 들였다.
매일 저녁 아이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가지는데 요 며칠 아이가 전래동화책을 몇 권 들고 와 읽어달라 해서 함께 읽었다. 예부터 강조해왔던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혜와 정과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 효와 같이 아이와 함께 나누기에 좋은 책들도 많았다.
그런데 몇몇 권의 책들은 읽으면서
‘이 책은 꼭 읽어줘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내용들이다.
부잣집 아들을 시집보내기 위해 며느리 시험을 보는 ‘며느리 시험’이라는 책이 있다. 얼마큼 알뜰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를 따져 며느리를 고르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아껴 쓰며 지혜롭게 살아야 한다. 인 것을 알겠지만 왜 굳이 그 배경과 사건이 부잣집 부모님이 아들의 짝을 시험을 치러가며 고르는 것이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 시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모든 책의 여성들은 집안일을 하거나 아이와 남편을 돌보는 역할로 나오는 반면 남자들은 정의로운 일을 해내거나 사건을 해결하는 역할로 나온다.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며 내 역할을 수행해 가는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혹시나 아이가 책을 통해 구시대적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복적으로 읽어주는 책의 내용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우리가 그토록 아이들로 하여금 독서를 강조하지 않았던가.
비단 성역할에 관한 문제뿐만이 아니다.
극소수의 책을 제외하고는 가난한 사람은 착한 사람, 부자들은 늘 욕심쟁이라 벌을 받는 사람으로 나온다. 이러한 설정들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경제교육’의 바탕에 무의식적인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재물에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는 것, 돈 많은 사람들은 모두 탐욕스럽기만 할 뿐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들이 기저에 깔려있게 되어 ‘돈’ 얘기를 당당히 대놓고 하는 것을 꺼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의 어느 한 부분에는 모두가 필독서라 하여 읽었던 전래동화의 내용들의 영향도 없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와 함께 책을 읽을수록 더 강하게 들었다.
그 책들의 대다수는 내가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이기도 했다. 다만 그 시절의 나에게, 그리고 나의 부모들에겐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내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여전히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을 단지 교훈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정서를 배울 수 있다는 이유로 읽어줘야 할까? 다시 고려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백지와도 같은 아이들에게 전래동화에서 상황은 쏙 빼고 교훈만을 찾아내 이해시킬 수도 없을뿐더러 반복되는 책의 내용이 마치 그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처럼 받아들여지도록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래동화는 이제 그만 읽자!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달라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만큼, 더 나은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게 해주고 싶은 만큼, ‘필독서’라는 말에 무턱대고 읽어주기보다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밤엔 받아 둔 전래동화책을 미리 읽어본 후에 굳이 읽어주고 싶지 않은 책들은 정리해 넣어두려 한다. 그리고 전래동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을 전달하되 지금의 상황과 어울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