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엄마, 이유리 씨.
아이가 좋아하던 책을 함께 읽고 있었다.
마루라는 아이와 봉달이라는 강아지 그리고 마루의 엄마가 놀이공원에 다녀오는 동안 마루와 봉달이가 자꾸 도망가서 마루 엄마가 찾아다니는 내용이다.
‘마루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
‘그럼 봉달이는?’
‘빵집 앞에 있네~’
위와 같은 놀이를 하며 벌써 몇 번이고 읽은 책이다.
어제도 어김없이 마루와 봉달이를 찾고 있었는데 아이가 대뜸
‘이 사람의 이름은 뭐야?’
라고 물으며 마루 엄마를 가리켰다.
아이의 물음에 별다른 생각 없이
‘마루 엄마!’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다시 한번
‘이름이 뭐야?’라고 했고
난 어김없이
‘마루 엄마~~’라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아니 이름이 뭐냐고. 이름!’
아.
‘이름? 이름… 그러게..’
책 어디에도 마루 엄마의 이름은 없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굳이 마루와 봉달이를 찾는 책에서 마루 엄마의 이름이 나올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엄마가 나오는 책에 엄마의 이름이 불려지거나 나오는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그저 엄마일 뿐이다.
‘이름이 뭘까? 마루 엄마라고만 나오네. 엄마도 모르겠네…’
그러자 아이가
‘그럼 우리가 이름을 지어줄까?’
라며 생긋 웃었다.
‘그래 그러자!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이유리!’
‘이유리? 예쁘네 이름! 좋아! 그럼 우리 이 사람의 이름을 이유리라고 불러주자!’
어디서 나온 이름인지 모를 ‘이유리’라는 이름을 지어주고는 아이가 다시 한번 책을 펼쳐
‘마루는 여기 있고 봉달이는 여기, 마루 엄마 이유리는 여기!’라고 외쳤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네 엄마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대게 누구 엄마로 불리곤 한다. 심지어 아이의 이름으로 불려질 때도 많다. 분명 그녀들의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엄마도 오빠를 낳은 그 순간부터 친척들에게는 물론 친구들에게 조차 ‘대길이 엄마’ 아님 ‘대길이’였다.
나도 그렇다. 이젠 어딜 가서 내 소개를 할 때면 내 이름보다 ‘지후 엄마’라고 말할 일이 더 많아졌다. 휴대전화에도 누군가의 이름보다 ‘ㅇㅇ이 엄마’로 저장된 사람이 더 많다.
아마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다들 그렇게 불려지고 있을 테지. 분명 다들 자기 이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일까. 여자들은 엄마가 되고 나면 대부분의 삶을 ‘누구의 엄마’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일에 대해 결정할 때도 ‘나’ 보다는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고 ‘나’를 위한 일 보다 ‘누군가의 엄마’를 위한 일들을 더 많이 하는 걸 보면.
분명 내 이름이 아닌 ‘누구 엄마’라고 불려지는 게 그런 사고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는 요인일 거라 감히 생각해본다.
어제부터 아이가 던진 질문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 생각이 그냥 흩어져 사라져 버리기 전에 기록해두고 싶어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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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으로 불려지고 싶다.
그래서 결코 나라는 존재가 엄마로만 덮이지 않기를 바란다. 고유의 이름처럼 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고 싶다. 나도. 우리 엄마도. 그리고 누군가의 엄마로 불려지고 있을 많은 그녀들도.
+ 문득 든 생각인데,
누군가의 엄마인 것도 ‘나’ 임에 틀림은 없으니 이제 소개할 때 ‘마루 엄마입니다’로 끝낼 게 아니라 ‘마루 엄마 이유리입니다.’로 하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지지 않을까? 엄마인 나도 지키고 이유리인 나도 지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