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남의 집에 놀러간 느낌이랄까?
결국 퇴사한 무용과 출신 마케터, 이제는 자치구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막내 사원,
또또 퇴사한, 그리고 내 마음대로 끄적이는 문화예술과 무용
지금은 2021 문화예술기관 연수단원으로, 하나 하나 느낀 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21년 3월 첫 주.
설레이는 맘으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긴장해서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도착하니, 25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로비에 덩그러니 앉아 담당자분이 오시기까지 기다렸다.
9시가 되기 5분 전, 드디어 담당자분이 날 찾아왔다.
휴, 드디어 어색함을 그나마 조금 덜 수 있겠어!
응? 아니네?
담당자분과 나, 오직 단둘이 마주보고 앉아 계약서도 검토하고, 이런 저런 회사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참 낯을 많이 가리는데-
또 회사의 규모가 있다보니, 왠지 모르게 주눅 아닌 주눅이 들었다.
지하부터 지상 n층까지 건물투어를 하는데.. 이 공간이 이 공간인지 참으로 많이 헷갈렸다.
그리고 이 팀 저 팀 인사하며 돌아다니다보니, 어느 새 꼬르륵 배꼽시계에 맞춰 점심시간이 되었다.
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자리까지 정비하고 나니 벌써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다. 아직까지는 남의 집에 놀러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신세지고 온 느낌? 이 또한 괜찮겠지라며 나 자신을 달랬다.
내일은 더 재밌는 일이 펼쳐질거라면서 말이다.
아직까지 딱 맡은 업무가 없어, 그 동안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어 놓았던 칼럼, 논문 등을 읽고 있다.
처음에는 (아니, 물론 지금도) 눈치보느라 글을 읽는 건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했는데
한 3일 정도 지나니, 나도 모르게 진지하게 읽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 하나 읽어내려가다보니, 새삼 내가 바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눈 앞에 보이는 실무에 급급해서 실제로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간이 참으로 나에게 필요했고,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잠시 나에게도 쉴 시간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 견문을 넓힐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앞으로 더 소중히 써야 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일이 하고 싶긴 하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듯이 아직은 맡아서 하는 업무가 없다.
처음에는 긴장하느라, 적응하느라 괜찮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일이 하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고 있다.
나에게 어떤 업무를 맡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들 보기에 아직까지 내가 공간이든, 사업이든, 분위기에 적응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불편해보이겠지. 나 스스로도 그렇게 느끼는 데.
메일 작성, 그리고 전화 받는 것은 자다가도 딱딱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음 그만큼 어렵지 않게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무슨 일인가.
메일 하나 보내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전화를 받아도 개미 목소리로 소곤소곤 댄다.
이러니 내게 일을 맡겨줄리가.
매일 퇴근 길에 한 숨을 내쉰다.
오늘 나의 바보같은 모습으로 인해.
괜찮아지겠지.
새로운 직장명이 박힌 명함을 받았다.
오묘한 감정이 들었다. 너무 짧은 시간에 정리하고 이직해서 그런가보다.
이 명함을 받아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내가 이자리에 있기까지 어찌보면 내가 투덜되었던 그 회사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스러운 업무부터 가내수공업, 행정까지.
안해본 것보다 해본 것이 더 많았기에.
그래서 두렵기는 해도, 못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낫다고들 하나보다.
좋아.
나도 이번 기회 해보고 후회하지 뭐.
기왕 하는 거 잘하자. 즐겨보자. 또 어떤 인연이, 또 어떤 기회가 어떻게 생길지 모르니까.
그 어느 날 백지명함이 되더라도.
- 연수단원 일주차를 지나며
*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