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러시는 의류 스타트업으로 시작해서 잘 된 회사였다. 온라인몰로 시작했는데, 창업주인 지수가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지면서 매출이 매해 몇 백 퍼센트씩 뛰었다. 지수는 현재 어느덧 대표가 되었다. 처음에 혼자 시작했던 일이, 지금은 20명이 조금 넘는 직원들을 거느리게 되었다. 사무실은 직원이 5명이 될 때부터 구했다. 지수는 총괄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의 앰배서더로 활약했다. 지수가 착장 샷을 찍어 올리면, 그 제품은 완판이 되었다. 과재고가 생기면, 지수가 직접 인스타그램에 성원에 고마워서 특별히
손해를 감수하고 내놨다는 느낌으로 세일 소식을 알렸고, 그러면 또 언제 안 팔렸냐는 듯이 불티나게 팔렸다. 찍기만 하면 매출이 마구 마구 올랐다.
패션 회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는 재고 관리였다. 사이즈 별로 정확하게 수량을 예측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요즘처럼 오버사이즈가 유행이면, 사람들은 또 각기 나름의 해석과 취향으로, 평소 입는 사이즈와는 다른 사이즈를 골랐다. 그러면, 기획자 입장에서는 더욱 예측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지수는 타고 난 사업감으로 이 오버사이즈 패션 때문에 오는 예측의 어려움을 역이용했다. 딱 맞지 않게 입어도 되는 옷들이 유행하면서 한 가지 장점은, 굳이 딱 맞는 옷을 시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지수는 자신의 센스로 뭔가 적당히 모두가 잘 맞을 수 있는 프리 사이즈 옷을 셀렉하는 눈썰미가 있었다. 몸집이 좀 큰 사람은 큰대로, 작은 사람은 루스하게 잘 맞는 그런 옷들. 몸집 큰 사람이 너무 루스하게 입으면, 더 커보인다. 몸집이 작은 사람은, 캣워크에 나오는 모델들처럼 루스한 세련된 핏을 뽐낼 수 있었다.
처음 몰을 런칭했을 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스몰 미디움 라지로 다양한 사이즈를 선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품의 종류수가 늘어나면서 재고 관리가 큰 부담이 되었다. 쇼핑몰의 규모가 커질수록, 혹시 매출이 잘 되지 않았을 때 떠안아야하는 재고 부담도 커졌고, 발주는 겁이 났다. 원사이즈로 옷이 가능한 스타일로 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도 재고를 위한 건 아니었고, 유행이 와서 그냥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재고 관리가 쉽다는 것은 얻어걸린 장점이 되었고, 그런 스타일의 옷들을 더 많이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런 옷들로 채우기 시작했는데, 아무나, 꼭 몸매가 좋지 않아도 편하게 입기 좋은 쇼핑몰이라는 명성이 붙기 시작했다. 거기에 적당히 유행하는 감성이 더해져, 여성스러운 라인의 옷들과는 조금 다른 개성이 더해졌다. 지수 대표는 일이 풀리려면 이렇게도 풀리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기 고객들의 데이터가 쌓이자, 브러시가 만들면 팔릴 옷과 안 팔릴 옷이 보였다. 사실 일반적인 회사에서 하는 대단한 CRM 시스템 같은 것은 없었다. 워낙 시스템이 없는 회사다보니, 발주량은 항상 최소 오더 단위로 거의 비슷했다. 매일 매일 자기 쇼핑몰을 보는 게 취미이자 일인 지수 대표 눈에 'SOLD OUT'이 뜨면, 바로 회사는 일사천리로 추가 주문을 했다. 그런 경험치들이 쌓이는 것, 장사에서 경험이라는 것은 무시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