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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철단골 Oct 03. 2019

마녀_3

도원결의

생각보다 옷은 잘 팔렸다. 지수는 몇십만원 정도 차익을 남기면서, '어? 이거 전업이 될 수도 있겠는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무렵 즘 본 면접들이 잘 되기도 하고, 안 된 것도 있지만, 사실 회사에서 정하는 당락과 상관없이, 지수는 계속해서 만나는 면접관들마다 별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리핀 어학 연수는 왜 1년이나 다녀온 거예요? 교환학생이나 다른 프로그램은 없었나요?"

"미술 전공이 이 보직에 어떻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인턴 경험이 없는데.. 회사나 조직 생활에 대한 이해도는 있으신가요?"


아니, 내 이력서에 써 있는 내용들인데 왜 굳이 또 묻고 묻는거지? 질문들을 답하면 답할수록 짜증이 몰려 왔다. 더군다나 면접관들의 그 답답한 표정이란. 우리 아빠도 저런 아저씨겠지. 젊은 직원들이 얼마나 싫어할까. 이런 생각하니 아찔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늘과 같은 부모님 은혜를 리마인드하고 마인드 컨트롤 해봐도, 나도 아빠랑 대화가 안 통해서 답답한데, 직원들은 더하겠지. 그런데 차라리 저런 질문들은 나았다.


"복사하고, 회사에 중요한 손님이 오면 다과 준비하고, 사무실 정리도 좀 하고. 이런 것도 솔선 수범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요? 요즘 밀레니얼인가들은 이런거 하기 싫어한다면서?"

"집은 어느 동네 살아요? 아버지는 뭐 하시죠?"

"인상이 깐깐해 보인다는 말 많이 듣죠? 그거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 있어요? 회사란 모름지기 어차피 결국엔 조직이란 말이지."


이런 질문인지 독백인지, 대답하기도 애매한 질문들도 이어졌다. 회사가 작을 수록 더 그랬다. 작을수록 더 가족적일줄 알았는데, 작을수록 무례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대답하기 싫어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다. 면접의 순간에는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물론 면접장을 나온 후 부터는 바로 휴대폰으로 주문 현황을 체크했지만.


월 수익이 백만원 이상이 되는데는 몇달 걸리지 않았다. 다섯달째쯤부터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배송이 벅차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하루에 한두건 들어올 때는 글씨도 정성스럽게 쓰고, 예쁘게 입으라는 메시지도 적어 넣었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졌다. 판매하는 옷 종류는 10가지 정도가 되었다. 인터넷 쇼핑으로 돈 버는게 이렇게 쉬운거면 남들은 왜 안하고 있는거지? 생각했다.


그 때부터였다. 다른 온라인 업체들과 비교되기 시작한건. 지수의 사이트는 누가봐도 그냥 개인이 찍어 올린 블로그와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옷 사진을 보고 구매하는 사람들이 있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내가 장사를 해보니, 다른 사람들의 사진들이 얼마나 신경 쓰고 올린 건지 보이기 시작했다. 지수는 은진에게 알바를 제안했다. 사진 좀 찍어주고, 웹디자인 좀 해달라고. 그런데 진짜 신경 쓸거 없고, 아주 간단하게 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은진은 이걸로 돈 벌 생각은 없고, 친구가 부탁하는거니 그냥 5만원씩만 달라고 했다.


내가 만들 땐 몰랐는데, 디자이너의 터치가 들어가니 페이지가 제법 그럴싸해졌다. 지수는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뭐가 다른거지, 한참 생각했다. 그 한 끗차가, 인터넷 페이지처럼 보이게 하거나, 블로거처럼 보이게하는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했다. 은진은 화장품 회사에서 오래 일했지만, 그 센스가 옷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고급스럽거나, 휘황찬란한 건 아니었는데, 뭔가 더 사고 싶어지는 각도와 페이지 구도를 아는 것 같았다. 설명 문구도 은진이 조금 손을 대면, 더 그럴싸해졌다.


지수는 6개월이 지나고, 졸업을 예정에 둔 학기 마지막 쯤 몇 군데는 붙은 곳도 있었고, 떨어진 곳도 있었다. 부모님한테는 모두 떨어진척하고 죽상을 했다. 회사를 포기하고, 이 일을 계속 해보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의 반대가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붙은 회사 리스트를 보고, 면접관들 얼굴을 떠올리자 한숨만 나왔다. 1차를 보고도 답답했는데, 2차 면접 때 면접관, 즉 임원들을 보니 더 답답했다. 지수는 이 일을 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진과 은진도 합세했다. 셋은 같이 지수의 집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 작은 집이 브러시의 시초가 되었다. 엄마는 셋이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닌건 알겠는데, 도대체 인터넷에 무슨 재주로 옷을 판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 십만원씩 벌고 있고, 벌이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그러려니 했다. 딸이 취업이 안 돼서 취업 준비만 하고 있는 것보단 낫겠지 싶었다. 지수는 엄마에게 '나 면접 준비도 병행하면서 하는거야'라고 둘러댔다. 지수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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