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이찬혁- 장례희망

by 한두세술

종교를 가져보겠단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종교를 미워하는 건 아니지만, 종교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다. 지금도 하루하루 바쁜데 종교를 위한 시간을 어떻게 내는지. 실체 없는 믿음을 위해 내는 시간이 아깝단 생각을 했다.


하지만 죽음에는 관심이 많았다. 관심이라기보단 어쩔 수 없는 예민함이었다. 누구와도 이별하고 싶지 않단 욕심 가득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예민함.

-

그리고 오늘 이찬혁의 장례희망이란 노래를 듣게 됐다.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내 장례식을 지켜보는 듯 죽음에 몰입하게 하곤


“오자마자 내 몸집의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죽음 뒤에 내가 좋아하는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맺을 수 있다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게 하고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라는 확신이 있네“

떠나보냈고, 앞으로 떠나보낼 수많은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말에 희망을 품게 하는 노래였다.



한 번도 믿지 않았던 종교를, 그리고 천국을 한 번쯤 믿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아니면 그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으로 이별을 덜 두려워할 수 있다면 한 번쯤 속는 셈 치고 믿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믿음 그 자체보다, 믿음이 주는 힘-이를 테면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란 파란색 희망의 힘 때문에 종교를 믿는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다.


노래를 듣고 종교를 가지게 됐단 이야기는 아니다. 노래가 가진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 종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 그리고 죽음 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을 그냥, 어떤 근거도 없이 그냥 한 번 믿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영원한 이별이 두려운 나에게,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위로 같은 노래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른에게 배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