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처음 설계일을 했었다. 설계사무소가 아니었기에 주로 주택을, 가끔씩 펜션을 디자인했었다. 많고 많은 복중에 나는 사수복이 참 없는 편이었다. 시작부터 직속상사인 분은 일하다가 내가 1년 차가 되던 해에 그만두었다. 1년간 나는 거의 설계일을 배웠다기 보단, 주택의 외부디자인을 이리저리 해보았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스케치업을 주로 썼었는데 감성보다 이성이 더 발달한 나는(요즘 유행하는 mbti로는 T성향이 엄청 강하다) 그 감각을 익히기가 매우 힘들었다. 그 이후에는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써먹으며 체계가 없는 조그마한 회사에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문서정리가 정말 엉망이었다) 설계는 큰 금액이 오가는터라 자료정리가 곧 큰돈을 막는 것이었고, 그게 장점이었던 나는 연봉협상 때 꽤 많은 돈을 올렸었다. 그러다 실장님이 새로 들어오시고 제대로 된 설계와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는 야근을 해도, 주말출근을 해도 사실 재밌었다. 설계일엔 디자인하고 동선 짜고 도면 그리는 게 전부는 아니다 보니 모든 게 다 새로웠고,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재미로만 느껴졌다. 또 잡지에도 실리고(비록 이름은 안 나오고 회사명만 나올지라도) 실제 건축주분들이 살아가고, 운영하는 건물들을 볼 때마다 성취감도 엄청 들었다. 하지만 이때 나는 건축법규를 공부하면서 점점 더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그렇게 경력을 쌓고 일하다가 현타가 오기 시작했다. 과연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을까? 한국사회의 정치를 이 조그마한 회사에서도 해야 하나? 일로써 능력을 인정받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등등 생각에 꼬리를 물고 깊어질수록 점점 더 일이 재미가 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냥 돈벌이일 뿐. 지금 하는 일들을 내가 평생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을 때 대답은 NO였다. 그때가 30살이 되던 해였는데 난 퇴사를 결심했다. 더욱더 크게 보고 배우고 싶어서 마지막 워홀나이기도 해서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하지만 행운은 나에게 오지 않았고 평생 한 번 받아 볼 수 있는 워홀비자는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한국에서 제일 복잡하고 큰 도시인 서울행을 결심했다. 분명 더 큰 것들을 배우고 나를 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은 서울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적응력이 뛰어난 나는 낯선 게 느껴지기도 무섭지도 않았다. 타지에서 서울직장을 구하고 면접을 보기란 회사 측에서 부담스러워하고 꺼려했다. 처음엔 기차 타고 올라가서 면접을 보다가 결국 난 방을 먼저 구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서울에 집을 구하고 짐을 정리하면서 면접을 본 곳들은 딱 11곳. 그중 면접에서 불쾌한 질문들도 꽤 받았었고 다양한 환경의 회사들이 있었다. 사무실에서 쩌든 담배냄새가 난다던지, 하는 일은 다양하나 사수가 없다던지, 출퇴근시간이 고역이라던지(나에겐 마의 2호선 라인이었다), 국민대나 홍대출신이 아니라고 비꼬는 질문들까지. 하지만 결국 11곳 전부 다 같이 일하자고 전화가 왔었고, 난 작업물들과(그 회사에서 작업했던 프로젝트들의 스케일) 출퇴근 거리를 고려해 한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설계사무소답게 8명에서 정말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였다. 주택만 설계하던 내가 오피스텔, 캠핑장, 5층짜리 상가건물등 다양한 설계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구나라고 느꼈지만 어느 회사나 장단점은 있는 법. 6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사들이 눈치 보고 퇴근을 안 하고, 직원들을 퇴근시키지 않는 모습들을 보고 또 한 번 딜레마에 빠졌다. 하지만 버티며 일하는 중, 상사들은 한 명씩 퇴사했고 결국엔 정시퇴근을 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훗날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큰 프로젝트도 해보고, 공모전에 나가 당선되기도 했다. 제일 처음 비전공자인 내가 주택부터 시작해서 관광단지를 설계할 날이 오다니.(물론 관광단지는 팀별로 작업한다) 하지만 야망이 내가 큰 걸까? 거기서도 부족함을 느끼고 뭔가 더 갈망하게 되어서 결국엔 캐나다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정말 운 좋게 한국에서 워크퍼밋을 받아 캐나다에 오게 되었다. 직업병이 무서운 걸까? 처음 도착했을 때도, 1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다니면 건물의 구조, 설계부터 눈에 보이고 공사 중인 현장을 지날 때마다 공정들이 눈에 훤하게 보인다. 한국과는 다르게 설계되고 시공되는 과정을 보는 것도 아주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