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자 익숙한 어둠이 나를 반겼다. 어둠이 익숙한 날이면, 도통 잠들지 못한다. 이런 날에는 산책 겸 조깅이 적당하다. 편한 복장으로 환복 후, 몸을 풀었다. 이제 신나는 음악만 남았다. 에어팟 너머로, 비트가 쏟아진다. 매 시즌 때마다 챙겨보는 '쇼미더머니’ 시즌8. 도전자들의 랩을 들으며 경쾌하게 뛰었다. 그중에서도 윤훼이라는 여성 래퍼가 인상 깊었다. 목소리도 좋고. 나도 랩 가사 한번 써볼까, 하다 그냥 계속 뛰었다.
30분쯤 지났을까. 몸에서 땀과 열이 사이좋게 피어올랐다. 그러다 문득, '무능'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어떤 일을 감당하거나 해결해 내는 힘이 없음을 뜻하는, 익숙한 단어였다. 발걸음을 멈추고 잠깐 숨을 골랐다. 그나저나 왜 갑자기 ‘무능’이 떠올랐을까? 거창한 의미가 있어서 떠오른 건 아니었다. 그냥 떠올랐다. 조깅을 마치고 돌아가면 '무능'과 관련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무능'이란 단어는 내 삶에 자주 등장했고, 착실히 따라다녔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때 나오는 주저함과 함께. 그래서 미웠다. 내가 밉고 그 단어가 미웠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이런 생각들이 꼭 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란 걸 알았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목격했으니까.
반대로 지금은 그 무능을 내가 쫓는다. 무료한 일상의 반복 속에서 낯선 무능을 찾는다. 그런 감정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성장했기 때문이다. 지속의 힘을 믿고 있으니까. 지금은 무능이지만, 끝까지 그것을 붙잡고 해내면 유능하게 된다(그렇다고 내가 지금 유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쭈글). 감당하기 어렵고 해결할 능력조차 없었던 일이 지금은 한결 나아졌다.
무능만큼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도 쫓는 요즘이다. 놓인 상황은 다르지만 위태롭지만 끝까지 나아가는 이를 보면 가슴이 뛴다. 벅차다. 그 에너지로 사는 것 같다. 여기서 윤훼이는 등장해야 된다. 실력 있는 남성들 사이에서, 버티고 있는 그녀를 주시한다. 1차 예선에서 가사를 버벅거려 탈락의 위기도 있었지만 2, 3차가 이어질수록 빛나고 있다.
-김미경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