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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Nov 14. 2019

아흔한 살 '맥도날드 할바생'의 정체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있다."

근사한 어른으로 늙고 싶다.


이십 대 내내 외치던 말이다. 소소한 몇몇 기준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맡은 일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 진심으로 가족과 타인을 사랑하는 어른을 꿈꿨다.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 사랑 그리고 가슴속 깊이 울림을 줬던 문장과 장면들이 모여 지금 나로 서 있다. 여전히 근사한 어른이라기엔 모자란 부분이 많다. 가끔 방향성을 잃을 때면 때에 맞춰 근사한 어른들이 내 시선으로 다가온다. 그런 날이면 하루가 즐겁다.


내게 오늘 아침은 특별했다. 여운을 남기는 어른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1928년생 아르바이트생의 이야기를 접했다. 일터는 서울 강북구 미아동이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91세 임갑지님. 그는 젊은 고객과 동료들에게 희망 전도사가 되기 위해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90대 아르바이트생도 청년들과 똑같이 땀을 흘리죠.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된 일이지요.




그의 주 업무는 '오와 열'을 맞추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과 수, 목, 금요일에 출근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일했다. 미리 도착해 테이블을 비롯해 주변 정리를 한다. 컵과 트레이를 세척하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것도 몫이다. "식기 하나도 내 부모에게 드리는 것처럼 깨끗하게 씻고 있다."


그동안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근도 없었다. 20km 떨어진 양주역에서 오전 7시 48분 열차를 타고, 30분 일찍 출근했다. 미역 주변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주웠다. 매장 안에서 침을 뱉고, 의자에 다리를 올리며 큰 소리로 떠도는 학생이 보이면 다가가 인사를 건넨 뒤 바닥을 닦았다. 거칠었던 학생들은 "죄송하다"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자녀들의 반대는 없었을까. 그는 평생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그렇다고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간 적도 없는 삶이었다. 슬하에 3남매가 있는데 맏이를 세 살 때 잃고 지금은 장성한 둘째 딸과 셋째 아들이 제 몫을 다 해주고 있다.  


그때쯤이었다.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니 뭔가 허전하고 무료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2003년 일자리를 찾다가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자식들은 건강에 무리가 될 수 있다며 거듭 말렸다. 하지만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이게 운동이 되고 정신적으로 좋다."라며 설득했다.


그가 알바로 번 돈은 매달 60만 원 정도다. 이 돈으로 봉사 단체 회비와 교회 헌금을 내고, 조금씩 저축했다. 몇 년 전에는 100만 원을 모아 손주 대학 등록금에 보탰다. "가족에게 작은 생일 케이크를 사줄 여유가 있어서 참 좋았다."라고 고백했다.




지난 11월 8일 서울 종로 맥도널드 본사에서 그의 은퇴식이 열렸다. 91세인 그는 여전히 건강하지만, 이제 쉬면서 노년을 보내자는 가족의 권유로 퇴사를 결정했다. 맥도날드는 17년간의 헌신과 철학에 공감하며 감사패를 전달했다. 그는 은퇴식에서 말했다. "시급 받는 알바생일 뿐이지만, 매장 관리자라고 생각하고 점포를 내 것처럼 아꼈습니다. 지금 처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어디서든 도약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어렵게 직장을 얻었지만 다양한 이유로 의욕과 만족감을 잃는 청춘들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만 찾으면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나기가 더 어려워진다. 창창했던 과거에만 집착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못하면 삶에 대한 만족감도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의 시간에 충실한 게 정말 중요하다. 행복은 과거와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있다."



노년에 가질 수 있는 기쁨은
젊은이가 가지는 기쁨과는 다르지만
결코 모자라지 않다.

_ W. Somerset Mau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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