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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Nov 25. 2019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결혼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결혼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결혼은 얻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다. 결혼은 매일 당신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결혼식까지 앞으로 7일 남았다.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서로 바쁜 11월을 보내고 있다. 가끔 전화 한 통 할 겨를이 없을 때도 있다.


지난해 9월 첫 상견례를 가졌다. 나는 경상도, 그녀는 전라도. 양쪽 부모님의 강한 억양 덕분에 우린 분주하게 번역(?)하기 바빴다. 첫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즐겁게 이어졌다. 결혼 준비는 전적으로 우리 두 사람의 의견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다. 식장과 스드메를 알아봤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애초 결혼 예정일은 3월 말이었다. 하지만 시련이 닥쳤다. 건강하시던 장인어른께서 올해 초,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전날밤까지도 “매일 고생 많다.”며 응원해주셨는데.  


그렇게 어머니와, 그녀, 남동생이 돌아가며 간병인 역할을 도맡았다. 간병인을 쓸 때도 있었지만, 가족만큼 꼼꼼하게 챙겨지지 못했다. 덕분에 세 사람은, 분주한 속에서 병실을 오갔다. 나는 늦은 시간, 모든 일정을 마치고 어두컴컴한 병실을 찾았다. 장인어른 옆에서 숨죽여 자고 있는 그녀를 보고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했다. 낮에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밤이면 여러 활동을 이어갔다. 마지막 목적지는 병원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모두의 사랑과 포기하지 않는 자세 덕분이었을까. 장인어른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하셨다. 아직 완벽한 상태까진 아니지만, 눈을 뜨시고 우리를 바라본다.



어느 때보다 짧고도 길었던 2019년이었다. 우린 자주 웃고 울었다. 다툴 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왔다. 나보다 현명하고 따뜻한, 그녀 덕분이다.


나는 기억한다. 그녀에게 처음 고백했던 날. 반드시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겠다고. 부들부들 떨면서 고백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환하게 웃던 미소도. 가끔 다투더라도, 밤이면 두 손잡고 산보하겠다는 약속도.


우린 서로에게 말했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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