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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첫 행진

낡은 일기장에서 스무 살 목표를 발견했다

by 춘프카
금일 오후 6시, 결혼


알람이 울렸다. 고대하던 그날이다. 결혼식장에 들어서고 “신랑, 신부 입장”이라는 멘트와 함께 우린 손잡고 걸을 것이다. 하루 종일 기분 좋은 떨림이 지속되는 순간이다.



스무 살 봄이었다. 일기장에 수년간의 목표를 기록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철부지였지만 쓰는 내내 행복했다. 군 제대 후, 인도 여행을 하고, 이십 대 후반에는 내 꿈을 향해 다가서며, 늦지 않은 때에 따뜻하고 상냥한, 웃음이 많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상상을 하며 끄적거렸다.


오늘은 하루 종일 스무 살 때 썼던 목표들이 떠올랐다. 얼마나 이뤘을까. 하나씩 체크해보았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였다.


목표의 제일 하단부에 위치한 문장이 떠올랐다.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좀 근사한 남자이고 싶다. 어떤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느 정도 이룩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기엔 부끄럽지만, 조금은 다가가지 않았을까.



휘청되고 위태로웠던 나는, 한 사람을 만났다. 철없고, 감정 기복이 심한 나를 묵묵하게 사랑해주는 사람. 무조건 내 편인 사람. 끄적였던 그대로인 상냥하고 따뜻한 사람을 만났으니, 나는 행운아다. 앞으로 쓰게 될 글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더 다양한 글감과 경험들로 이뤄지겠지.


결혼에 대한 숱한 조언과 경험담을 원하든 원치 않던 자주 접하고 들었다. 어디까지나 참고만 할 뿐이다. 우린 우리대로 부딪치고 마주하며 서로 한 걸음씩 걷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린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그 첫 출발점이 곧 몇 시간 뒤 이뤄진다. 우린, 전우다. 서로 함께 성장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느 때보다 씩씩하게 걸어야지. 우리의 첫걸음이니까. 진짜 모험은,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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