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프카 Jan 08. 2020

TV를 껐네

정확하게는 '멸종'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통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텔레비전이 사람의 생각과 시간을 통제한다.

처음에는 사람이 손가락으로 스마트폰을 통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마트폰이 사람의 생각과 시간을 통제한다.

_이창현 TV와 스마트폰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렇게 생활한 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첫 독립 후, '행복한 세상'(당시 살던 투룸 집)에 짐을 꾸렸을 때, 그곳에는 이미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었다. 집주인의 배려였다. 간혹 일찍 귀가하는 날이면, 이곳저곳 채널을 돌리며 시간을 허비했다.


그곳을 떠나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텔레비전을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 잠깐 머뭇거렸지만 과감하게 멸종을 선택했다.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기에, 느긋하게 시청할 시간이 없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겨우 생긴 여유를 무료하게 날려 보내기 싫었다. 이왕이면 책도 읽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은 텔레비전 없이 무슨 낙으로 사냐고 묻곤 했지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공간에서 소설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름대로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리고 작년 11월, 나는 또 한 번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함께 살아갈 그분과 함께. 처음에는 "적적하지 않을까?"하고 염려했다. 하지만 서로 대화를 거듭 나누는 속에 결국 없이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텔레비전이 매우 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나는 다른 방에 가서 책을 읽는다._그루초 마르크스


대신 친한 선배에게 선물 받은 빔프로젝트로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간혹 볼 수 있으니까. 또, 라디오 겸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입했다. 라디오는 FM98.7 영어 방송을 주로 듣는다. 물론 내 귀에는 전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우린 빈 여백, 공간과 시간을 성장하는 때로 활용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그분은 퇴근 후에도 일주일에 두 번 회화 스터디를 등록하여 다니고 있다. 나는 요즘, 외근이 잦아서 집에 귀가하면 늦은 식사 후, 잠들기 일쑤지만 최대한 무언갈 읽고 쓰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필요한 시점이 올까?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지금의 고요함을 충분히 즐기고자 마음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외로움과 행복은 전염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