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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Feb 14. 2020

멋진 여행을 위하여, 건배!

태국 자유 여행 첫 번째 이야기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여행지는 포르투갈이었다. 첫날 프랑스에 잠깐 머물다 스페인을 경유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도착하는 코스였다. 한국보다 9시간 느린 그곳에서 여유로운 나날을 꿈꿨다. 크고 작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는 구시가지를 오르내리며 산책하고 지는 노을을 한참 바라보기. 거리의 악사와 여행자를 위해 무료로 제공하는 맥주에 흠뻑 취하기. 그리고 늦은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인가를 끄적이다 쓰러지듯 잠드는 순간.


그렇게 세웠던 계획은 예측할 수 없던 나의 커다란 이벤트성 일정으로 유약하게 무너졌다. 그렇다고 크게 낙담하진 않았다. 현명하고 실력 있는 아내 덕분에, 사랑하는 두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었으니까.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까?" 하는 물음에 서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간 자식 키우고, 쉴 틈 없이 일하랴 전력으로 달려오셨던 두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선물 같은 시간을 전하고 싶었다.


방콕 왓포 사원에서. 정말 웅장했다. 사진으로 다 못 담아내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래서였을까. 쉴 새 없이 찰칵거렸다.


두 분은 살아온 환경도 성격도 달랐다. 처음 함께 여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했을 때의 반응도 엇갈렸다. 장모님은 "너무 좋겠다. 꼭 그렇게 같이 가자." 하며 소녀같이 웃으셨다. 대신 병원에 계신 장인어른을 염려했다. 우리도 조심스러운 부분은 그 지점이었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우리 처남이었다. 중학교 체육선생님이라 1월이면 겨울방학기간이었다. 사정을 말했을 때 흔쾌히 자신이 아버지 병간호를 도맡겠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함께 떠날 수 있었다.


반대로 우리 엄마는 처음에는 시크하게 "됐다, 마 치아라. 신혼여행에 내가 왜 따라가노?"라고 대답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설득하는 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장모님과 같은 마음이었지만, 선뜻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막상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정한 이후,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여행을 준비했다.  누구보다 많은 웹서핑으로 태국을 살펴보고, 수영복과 여행장비를 마련했다.


사진1) 심각한 표정에 비해 큰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던 나. / 사진2) 택시 기다리다 지쳐버린 모습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나는 정말 이번 여행에서 크게 이바지 한 부분이 없다. 단지 짐꾼과 목적지를 구글맵을 통해 잘 찾아다니는 것. 선두에 서서 걸으며 주변을 경계(?)하고 세 사람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준비와 노고는 아내 몫이었다. 늦은 시간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할 때 보면 보통 새벽이 넘는데, 그 시간까지도 아내는 현지 호텔 직원과 유창한 영어로 이것저것 묻고 확인하며 꼼꼼히 살폈다. 중간중간 섬으로 가는 일정 등도 발품을 팔고 현지 여행업체 담당자와 통화하며 자료를 모았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행사 차려도 되겠는데..."


그렇게 우리 네 사람은 방콕으로 향하는 저녁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시간은 6시간 정도 소요됐다. 그 전날 밤부터 잠들지 못해 살짝 피곤한 상태였지만 설렘이 더 컸던지 잠들 수 없었다. 점점 멀어지는 육지를 바라보며 무엇이라도 좋으니 가슴에 남을 수 있는 여행으로 만들자고 다짐했다. 엄마는 장거리 비행은 처음이라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귀가 계속 울린다고 했다. 장모님은 연신 웃음 띤 모습이었다. 내가 괜찮으시냐고 물었더니, "실은 나도 안 괜찮은데~ 참고 있어!"라고 말하셨다.



무사히 방콕 공항에 도착했다. 곧 마주한 것은 뜨거운 열기였다. 두꺼웠던 점퍼를 벗어던졌다. 첫날 묵을 숙소 이동 전, 공항에서 간단히 저녁 식사를 먹었다. 맥주를 좋아하는 엄마와 나는 태국 맥주 싱하 생맥주를, 알코올과 거리가 먼 장모님과 아내는 과일주스를 시켰다. 음식이 나오기 전, "우리의 멋진 여행을 위하여, 건배!"라고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시작됐다. 우리는 여행 기간 중 태국의 수도인 방콕에서 3일을 머물렀다. 남은 6일은 한 시간을 더 비행하여 도착한 푸껫에서의 시간이었다. 


다른 여행기록처럼 어디를 가서 무슨 음식을 먹었고, 유명한 어딘가를 다녀왔으며, 라는 식의 여행기는 잘 못 쓰겠다. 물론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소개될 수 있겠지만. 막상 다시 돌아와서 글에 빠져 쓰고 있으니, 그때 느꼈던 우리의 감정과 특별했던 순간과 장면들이 더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 조각들을 글감으로 하나씩 풀어가야겠다. 비록 처음 계획했던 포르투갈은 아니었지만, 좋았다. 충분히 몸도 마음도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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