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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Dec 05. 2017

제주도의 푸른 밤

모든 것이 좋았다

여행은 늘 새롭다

매년마다 새롭게 그 해의 목표를 설정하는데, 늘 빠지지 않는 것 중에 하나가 ‘분기에 한 번씩 여행하기’다. 돌이켜보면, 나름 바쁜 시간을 짬 내어 틈틈이 다녔다. 가족이나 친구, 또는 나 혼자서 떠나곤 했다. 좋았지만, 제주도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제주도가 그립다.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났던 그날의 용기도 그립다. 낡은 배낭 하나면 충분했는데.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피부에 닿는 시원한 바람과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던 풍경들.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노리 플라이의 ‘낡은 배낭을 메고’는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 배경음악이었다. 모든 것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단골 숙소가 되어 버린, ‘잠도둑’ 게스트하우스도 떠오른다. 인상 좋은 사장님과 동화작가인 사모님의 요리 솜씨는 항상 끝내줬다. 덕분에 늘 든든한 저녁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날 처음 보는 사람들 모두 ‘여행’이라는 공통점을 마주하며 밤늦도록 대화를 나눴다. 물론 맛있는 술과 안주는 기본이었다. 낡은 스피커로 퍼지는 김광석과 비틀즈와 유재하는 제주도의 늦은 새벽을 더 감미롭게 만들었다.     




10년 이상 서울 모 병원에서 간호사로 지냈던 여자분은 모아뒀던 모든 돈을 투자에 세계여행을 갈 것이며, 워밍업으로 제주도에 왔고 잠도둑에서 몇 날 며칠을 지낸다고 말했다. 중년의 한 신사분은 여행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주는 하나의 동력이라 말하며, 매년 5회 이상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또, 빡빡한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제주도로 와서 정착하고자 하는 청년, 그리고 그 청년을 바라보며 ‘딱 10년 전 내 모습이네.’라고 말하는 아저씨는, '제주도는 좋지만, 때론 아프다.'라고 말했다. 아프다는 말에서 더 궁금증이 밀려왔지만, 묻지 않았다. 한 여대생은 그 술자리에서도 대학 교수님의 요청으로 급하게 보내야 되는 이력서를 쓰며 ‘얼른 쓰고 합류할게요, 계속 말하세요.’라고 말했고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모두가 웃었다. 하나도 닮은 게 없는 지금의 사람들과 지금 이 순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듣고 보고 마시고 싶었고 그 결의는 실천이 되어 밝은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종료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제주도에 홀로 가서 그 정도의 흥미진진한 인물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뿐더러, 스치듯 다녔던 모든 곳이 좋았으니까. 그래서 더 그리울 수도 있을 게다. 덕분에 또 떠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 언제가 좋을까. 마음은 지금 당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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