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춘프카 May 02. 2018

짝사랑

그렇게 나를 알아 간다.

많이 좋아하고 있어요.


마음이 섬세한 사람이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그는 언제부턴가 자신의 시선에 빈번히 들어오는 한 사람을 조용히 소개했다. 밝고 웃는 모습이 좋다고 말했다. 본인과는 정반대의 성격인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한동안 자주 그녀를 내게 말해줬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의 모습 덕분에 나도 한동안 설랬다.


어느 날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그였다. 술이 잔뜩 취해 있었다. 힘들다고 했다.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묵묵히 들었다. 그리고 찾아갔다. 어두운 골목길 어귀에서 그를 발견했다. 글썽이는 그의 눈을 쳐다봤다. 아파보였다. 순간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 시인에게 자신이 짝사랑을 하고 있다며 '전, 사랑에 빠졌어요.'라고 말하는 청년. 그 청년은 사랑하고 있으니까 아프다고 했다. 시인은 덤덤한 말투로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답변하자 청년은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아파요. 그런데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고. 내 눈앞에 울고 있는 그의 곁에 가만히 있었다. 한참을 울었고, 한참을 아팠다. 그렇게 늦은 새벽까지 함께 있었다.


나도 하염없이 울기만 했던 날이 있었다. 아파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하염없이 울었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는 내가 할 수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실컷 아프고 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도의 푸른 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