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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pr 20. 2021

선배는 내게 시집을 건넸다

언론 단체 간사로 활약하던 때였다. 함께 일하던 선배는 제법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내게 시집 한 권을 건넸다.

“읽어보세요.
충분히 읽고 다시 돌려주세요.”


부끄럽게도 그 책은 여전히 나와 함께 있다. 제목은 이문재 시인의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1988년에 나온 그의 첫 시집이었다. 같은 대학 동문 선후배 사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이문재 시인을 알고 있었다. 시인보다는 기자로써. <시사저널>에서 문화 기자로 활약했던 삶을 먼저 접했기에 사뭇 다가오는 느낌이 달랐다. 조용히 책을 펼쳤다.


솔직히 말하면, 내겐 어려웠다.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시는 말이죠.”라며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느끼고 싶은데, 시인의 시선을 전달받고 싶은데 쉽지 않았다.


그런 내 표정을 살피던 선배는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해할 순 없어요. 저는 아침에 눈 뜨면 시를 소리 내어 읽어요. 읽다 보면 이해가 돼요. 내 감정에 따라 같은 시도 느낌이 달라져요.”



역시 명문대 국문학과 출신의 위엄. 알겠어요, 하고 다음날부터 실천했다. 눈뜨자마자 시낭송이라니. 긍정적인 변화는 있었다. 스스로 어색함을 느꼈는지 아침잠이 절로 달아났다. 그렇게 삼 개월 정도 했다.


돌아보면 선배 덕분에 이해도를 떠나 시와 가까워진 것은 사실이다. 이후 서점에 들르면 습관처럼 시집 코너를 찾는다. 그렇다고 반드시 구매할 요량은 아니지만. 훑어보며 읊조리며 위안을 얻는다.


 그래.
나는 아직 시와 멀어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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