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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Aug 12. 2021

인생은 경험해야 하는 현실이다.

나를 키운 경험 중 하나.
'노동'


처음 돈을 벌어본 때는 열일곱 살 무렵이었다. 당시 절친 아버님이 건설업에 종사하셨는데, 여름 방학 내내 잠만 퍼질러 자는 우리를 지켜보며 "인생의 참맛을 경험해봐라."라고 말했다. 


몸은 조금 고단하겠지만,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뜨겁게 땀 흘리며, 하루를 마감하는. 그런 로망을 품고 며칠 뒤 이른 새벽부터 공사 현장을 찾았다.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현실은 사뭇 달랐다. 무거운 모래와 벽돌을 등에 메고, 승강기도 없는 3층 건물을 수차례 오갔더니, 다리가 저절로 풀렸다. 어떻게든 악으로 깡으로 한 걸음씩 내딛다가 결국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분한 마음이 들었다. 혼자 씩씩거리고 다시 겨우 서서 나아가려 하는데, 짊어진 짐들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꼈다. 뒤돌아보니, 나보다 더 많은 벽돌을 이미 운반 중인 대머리 아저씨가 내 모습을 지켜보더니 아들 생각이 난다며 도와주는 것이었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 위기를 넘겼다. 점심시간 때 아저씨 옆으로 찾아갔다. 고개를 숙이며 감사함을 전했다. 아저씨는 처음인데 그렇게까지 하는 사람 못 봤다며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그러면서 담담하게 하는 말. 


"오늘 흘렸던 땀과 눈물을 잊지 않으면, 더 멋지고 근사한 남자로 성장할 거야. 나중에 더 크면 알겠지만, 사회라는, 인생이라는 짐은 훨씬 더 무겁고 고단하거든. 그걸 견디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잘해봐." 나는 한참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점심밥을 혼자 세 공기나 먹었다.


일 마치고 당시 내 손에 쥐어진 오만 원. 많은 생각이 스쳤다. 그동안 부모님은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하는 마음이 제일 먼저 들었고, 두 번째는 오만 원보다 더 큰 교훈을 얻은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마음이 저릿했다. 


그날 쓴 일기장에는 눈물과 땀 그리고 대머리 아저씨와의 대화를 고스란히 적었다. 온몸이 쑤셨지만, 마음은 뜨거워졌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이후 나는 다양한 일을 큰 고민 없이, 어렵지 않게 계속 시도했다. 


인생은 풀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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