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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Oct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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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쓰는 삶을 살아가자."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자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을 담아가고 있습니다. 10월 주제는 ‘내 인생을 바꾼 책 한 권’입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 있다. 각자 소중하게 여기는 책을 소개하는 것이었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선정한 책은 <기자로 산다는 것>.     

 

그 외에도 마음에 닿는 숱한 책이 있지만, 딱 한 권만 고르라면 주저 없이 그 책을 늘 소개했다. 글 쓰는 삶을 본질적으로 꾸게 되었던, 가슴 뜨겁게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읽어 내려갔던 날을 잊을 수 없다. 아래 글은 지난 프로젝트 때 썼던 글이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학창 시절, 쓰던 글 대부분은 일기나 편지 그리고 착실한 학교생활을 뽐내듯 이따금씩 교무실에 제출했던 반성문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빈종이 앞에서 방황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쓰는 게 왜 어렵다는 거지?” 좋은 문장이나 내용은 아니었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주저함이 없었다.    


   서점도 자주 드나들었다. 대부분 로맨틱한 정서를 풍기는 소설이나 시였다. 다독가는 아니었지만 한번 가슴에 닿는 책은 자주, 오랜 시간 아껴가며 읽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가슴이 쿵쾅거려서 무엇이라도 남기고 싶은 날엔 독후감을 썼다. 평소 가까웠던 국어 선생님은 늘 0순위 독자였다. 


   군 제대 후,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 <기자로 산다는 것>. 번민하던 내 청춘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좋은 기사 한편을 위해 치열한 나날을 보내는 그들과 '기자'라는 직업을 뛰어넘어 뜨거운 질문을 던지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벅찬 삶을 동경했다.


책 소개


   이 책은 벼락처럼 기획되었다. 2007년 7월 한국 언론계에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회사가 삼성 관련 기사를 무단 삭제한 데 항의해 1년 가깝게 경영진과 갈등을 빚어온 한 시사 주간지 기자 대다수가 집단으로 사직한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기자들의 사직에 비정규직과 취재차 운전기사까지 동참했다. 당시 회사와의 투쟁 여정을 기자들이 기록해 펴낸 책이 <기자로 산다는 것>이다(그들이 몇 년 뒤 주간 언론사를 설립했는데 지금의 <시사IN>이다).


 좌측 - 내 인생의 책 <기자로 산다는것> / 우측  - 영록서점에서 촬영

 

이 책은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2010년 7월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당시 나는 방황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거듭 질문하던 때였다. 뾰족한 수없이 번민하던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오래된 헌책방 '영록 서점'을 알게 됐다. 입구에 들어서자 먼지가 자욱했다. 즐비하게 쌓인 책들은 서로 길을 내고, 골목을 형성했다. '지지직' 거리는 턴테이블 위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가 울려 퍼졌다. 홀린 듯 이곳저곳을 살폈다. 곧 새빨간 표지가 인상적인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차가운 바닥에 앉아 책장을 펼쳤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열정으로 가득찬 편집국 풍경, 힘센 사람들에게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기질, 개성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까지. 이내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그간 막연하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래, 쓰는 삶을 살아가자."


   헌책방과 닮은 넓고 따뜻한 외모의 사장님께 책을 내밀었다. "좋은 책을 택하셨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진 않지만, 내 호주머니 속 잔고는 1만 원이 채 되지 않았으니 어느 정도 가격대를 가늠할 수 있다. 


<기자로 산다는 것> 목차


좋아하는 구절


나의 삼십 대, 나의 1990년대는 ‘시사저널’이었다. 나는 죽어라고 썼다(미국으로 건너간 이흥환 선배가 그랬던가. ‘이문재는 기사 자동판매기’라고). 기사를 많이 썼다고(잘 썼다는 게 아니고)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이쯤에서 털어놓아야겠다. 나는 기사를 빨리 쓰고 많이 썼다. 하지만 기사를 빨리 쓰고 많이 쓰기 위해, 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기사의 첫 문장을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 나는 기사를 생각했다. 기자는 늘 기사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든 것에서 기사를 생각했다. 술집에서 옆자리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기삿거리를 찾았다(그래서 모 신문사 여기자한테 욕을 얻어먹은 적도 있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할 때에도, 거리에서 포스터를 볼 때에도,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에도 나는 기사를 생각했다. 꿈에서도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그러니까 나는 기사를 빨리, 많이 쓴 기자가 아니었다. 나는 늘 기사를 생각한 기자였다. 
_<기자로 산다는 것> p.56 '네, 이문재입니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들이 행복하다.' 시사저널에 들어온 직후, 문정우 선배에게 들었던 이 말은 내 기자 생활의 '나침반'이 되었다. 그날 나는 밤 12시가 다 되도록 혼자 남아 기사를 쓰고 있었다. 남들은 일찌감치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지만, 맨땅에 헤딩하느라 바빴던 나는 늦게까지 남아 기사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회사 근처에서 저녁 약속이 있었던 문선배가 사무실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돌아왔다. 혼자 남아 야근하는 나를 본 문선배는 "실력이 모자라면 나머지 공부라도 해야지"하며 놀렸다. 내가 입을 삐쭉 내밀자 깔깔대고 웃던 문선배가 사무실을 나서며 한마디 툭 던졌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하고 기사 써봐라. 그걸 읽는 독자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 거야. 당신이 그렇게 고생해서 취재하고 쓴 기사라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_<기자로 산다는 것> p.125 '야박하고 불친절한 선배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좋아하는 구절 일부를 발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모든 페이지마다 밑줄이 그어져 있다. 기자로써의 신념과 태도, 글쓰기 교육도 모두 이 책을 발판으로 시작했다. 쓰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늘 내겐 교과서 같은 존재였다. 같은 책을 이토록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던 적도 없었다.



왜 이 책일까


   구입 당시 느꼈던 감정을 책 속 빈 여백에 기록했다. "두근거린다. 막연하게, 아니 내 가슴속 깊이 꿈꾸던 '삶'이 구체화됐다." 이후 숱한 도전의 나날이었다. 지망하던 언론사에 여러 번 낙방했다. 반대로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신문사에 칼럼도 쓰고, 라디오 시사 부분에서 직접 취재한 내용을 원고로 쓰고 DJ도 겸할 수 있었다.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수개월간 취재한 적도 있다. 내 가방 속엔 언제나 <기자로 산다는 것>이 있었다.


   이 책과 함께한 시간이 어느덧 10년이다. 그동안 작은 성취와 함께 여러 실패가 오갔다. 힘들었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늘 길잡이가 되어주는 스승 같은 책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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