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

이제 나를 표현하는 쓰기는 놀이로 진화 중이다

by 춘프카

내가 일하는 사무실로 매월 오는 정기 간행물이 있다. 조선 프레스에서 제작하는 <top class>인데, 인터뷰와 라이프스타일 전문 잡지다. 솔직히 말하면 평소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11월호는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스페셜 이슈로 '나도 작가 시대'라는 기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다. 현재 이곳 브런치를 통해 등록된 작가 수와 출간된 책의 종수가 등장했다. 지난 10월 초 기준으로 4만 7000여 명의 작가 그리고 4,200권.


한때 '작가'라는 타이틀은 특별하게 여겨졌다. 남다른 재능이 있거나 극소수에게만 부여되는 칭호였다. 기사 내용 그대로 표현하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직업군'의 성격이 강했다. 이런 추세는 요즘 희석되고 있다. 변호사, 음악가, 의사, 택배기사, 버스 운전사, 아파트 경비원 등 각자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런 글쓰기를 '르포형 에세이'라고 표현했다.


'르포'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지만,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르포는 프랑스어로 탐방, 보도, 보고를 의미한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허구가 아닌 사실에 관한 보고'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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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예 작가님

글쓰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분들과 인터뷰했는데, 내 시선에는 1945년생 정순예 작가님이 오래 머물렀다. 작가님의 첫 책 <강원도의 맛>이 세상에 나온 것은 일흔셋이었다고.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인터뷰 내용이 다 좋았지만,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래와 같다.


"마음으로나 생각으로는 평생 글을 쓰고 살았어요. 신춘문예를 볼 때마다 마음이 두근거렸고요. 당선작이 나오면 꼭 다 읽어봤어요. 나도 꿈을 버리지 않고 평생을 가져오다가 '인생은 60부터다' 이러면서 다시 시작했으니까 할 수 있었어요. 다 녹슬고 문드러져서 못 하지 싶었는데, 딱 시작하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문예반 하던 그 마음이더라고요."


그리고 다음 문장을 읽는데 마음이 저렸다. 어떤 심정인지, 감히 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그 애틋함이 동했다.


"저는 지금도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다 쓰고 갈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날 정도로요."


마지막으로 애정 하는 박연준 시인의 글도 읽었다. 정기적으로 기고 하시는 듯한데, 왜 이제야 알았을까. '나의 첫 책 이야기'라는 제목이었고, 내용도 읽는 내내 밑줄 긋기 바빴다. 수집해둔 문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 시인님의 글을 고스란히 담아본다.



(중략)

쓰는 사람은 누구나 '짐승의 계절'을 겪는다. 그다음에야 '첫'을 가질 수 있다. 첫 책엔 이런 게 들어 있다. 두 번은 가질 수 없는 열정, 섣부름, 용감함, 짐승의 이빨, 두려움, 무심함, 무색함, 치욕, 질주, 어림, 치기, 유치, 불사조, 깨진 무릎, 누더기, 왕관, 흐린 무지개, 진눈깨비, 허기, 울부짖음 그리고 작가의 미래.


나는 첫 책은 눈 감은 상태에서 써야 한다고 믿는다('감은 눈'이 아니라 '눈 감은' 상태인 게 중요하다). 내 두 번째 시집 '시인의 말'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꽃은 자신이 왜 피는지 모른다. 모르고 핀다."


첫 책은 '모르고 핀 꽃'이다. '처음'이란 '가속력'이란 바퀴를 달거나 '무지'라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무지가 속력을 만나면? 모른 채로 훨훨, 모르는 곳에 당도하게 된다. 몇 해는 지나 봐야 도착한 곳이 어딘지 알 수 있다.


(중략)


쓸 때 중요한 건 글의 음색이다. 나는 글에서 여러 개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첫 산문집을 쓰기 위해 목소리를 다양하게 사용했다. 창가에서 슬픔을 읊조리는 나직한 목소리 하나, 의자 위에 오른 광대처럼 까부는 목소리 하나, 뉴스를 진행하듯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 하나,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어린아이 목소리 하나, 음률을 사용해 노래하듯 말하는 목소리 하나...


이 목소리들이 나올 순서를 기다렸다가, 내 몸에서 착착 나오는 기분을 느끼며 썼다. 잘생길 수도, 세련될 수도, 여유를 가질 수도 없는 글들, 눈 감은 상태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쌓였다. 쓰는 사람은 자기를 비우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다 비워냈을 땐 허기인지 슬픔인지 모를 감정을 들고 기진맥진해 서 있는 사람, 목소리를 사용해 오래 글을 쓰고 나면 깨끗한 슬픔이 온다. 그 기분이 참 좋다.


(중략)


내 인생의 단 한 권 산문집으로 남을 줄 알았던 책은 앞으로 쓰게 될 책들의 물꼬를 열어줬다. 무명에 가까운 시인이 쓴 글을 읽고, 독자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입소문을 내주기 시작했다. 독자가 "마치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라고 소감을 말해 올 땐 놀랐다. 동일한 경험이 아니어도, 솔직하게 쓴 내밀한 이야기는 보편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로소 나는 글의 힘과 독자의 힘, 절박한 마음(마지막 콘서트여!)이 지닌 힘을 믿을 수 있었다.


만약 당신이 (첫) 책을 쓰고 싶다면 이것만 기억하시라.

스스로를 알아볼 것(자기 글의 음색), '모르는 채' 태어날 것.


(중략)

첫 책이 어떤 얼굴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갈지, 누구도 모른다. 쓰는 사람은 모르는 채로 견디며 나아가야 한다. '어떤'이란 형상, 미리 알 수 없는 책의 얼굴, 그것은 쓰는 자가 끝까지 홀로 지고 가야 하는 무겁고 또 빛나는 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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