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우정의 편지, 헬렌 한프 <채링크로스 84번지>
미국 뉴욕에 가난한 여성 작가가 있었다. 이름은 헬렌 한프. 평생 글을 썼지만 그리 많은 명성은 떨치지 못했다. 희곡 작가로 시작했지만 생계를 위해 방송 대본, 잡지 기자, 백과사전 항목 쓰기, 어린이 역사책 등 닥치는 대로 글을 썼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중년이 되었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절망하며 혼자 읊조렸다.
"나는 실패한 희곡 작가였다.
나는 아무 데도 가지 못했고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다음 날, 편지 한 통이 왔다. 보낸 곳은 영국의 고서점이었다. 가난했던 그녀가 서적을 구하기 위해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왕래했던 곳이었다. 긴 세월 동안 서점 직원과 도서 주문을 전하고, 청구서를 돌려받는 상업적 문서였지만 엄연히 편지였다. 구하기 힘들고 희귀한 것을 찾는 자의 절실함과 그 절실함을 이해하는 자의 성실함이 마주쳤다. 까다롭고 저돌적이면서 정 넘치는 가난한 작가와 점잖고 진지하면서도 적당한 여유를 보여주는 서점 직원의 목소리가 담겼다.
“전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겨보았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애가 좋고, 또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헬렌(1951년 4월 16일 편지)
신음을 멈추고 도서 구매자인 자신과 서점 직원이 주고받은 편지를 챙겨 출판사로 향했다. 이것이 전환점이 됐다. 출간 이후 여러 곳에서 편지, 전화, 선물이 날아들었고 직접 쓴 희곡은 아니지만 그녀와 서점 직원 간의 이야기가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매체로 만들어졌다.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긴 낭만적인 이야기 <채링크로스 84번지>의 탄생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