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러프 ROUGH

아무튼, 어묵

by 춘프카
gettyimagesBank

엄마는 늘 분주했다. 나와 여동생을 겨우 깨워 세수를 시켜놓고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우린 졸린 눈을 비비며 이미 출근하고 나간 엄마의 흔적을 확인하곤 했고, 그것은 일상이었다. 냉장고 앞 밥상에 올려둔 짧은 메모지와 함께 1천 원이 놓여 있었다. 메시지 내용도 금액도 한결같았다. ‘퇴근할 때까지 배고프면, 이걸로 동생이랑 간식 사 먹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허기졌다. 동생과 나는 주린 배를 채우려고 서둘러 집 근처 시장을 들렀다. “또 왔냐.” 저 멀리서부터 손 흔들며 인사하는 할머니가 보였다. 이곳에서 어묵을 파는 분인데, 우린 수년째 단골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마주했던 분이다.


주머니 속에 잔뜩 구겨진 천 원을 펴서 조심스레 전하면, 실컷 먹으라고 부추긴다. 고개를 끄덕이고 정말 있는 힘껏 먹었다. 어른이 된 이후 가끔 그때를 떠올려보면 이미 천 원 이상의 어묵이 사라지고 있음에도 빙긋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는 우릴 지켜보셨다. ​


그 덕분일까. 어묵은 언제나 내 곁을 함께 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문했다. 남몰래 짝사랑하던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그 친구는 맛있게 어묵을 먹고 내 마음은 거절했다.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던 날에도 그랬다. 언제나 어묵과 함께 했고, 그것은 일상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군대 첫 휴가날 어묵부터 찾았고, 신문사 최종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지친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어묵탕을 끓였다. 둘이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떨림을 전했다. 아내도 다행히 어묵을 좋아했다. 연애시절부터 단골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만나자고 말하면 다 알아들었다. 가끔 나는 혼자 중얼거리듯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도 많은데, 너무 이곳으로만 데려오는 건가?' 괜스레 마음이 쓰였는데, 언젠가 어묵과 엮인 나의 짧고도 긴 이야기를 듣곤 "더 좋아졌다."라며 미소 지었다. ​


이 정도면 소울 푸드로 여겨도 좋지 않을까?


글쓰기 모임 '당신을 쓰는 밤' 2월 주제 '소울푸드'를 바탕으로 썼습니다. 조금 더 길게, 깊이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대로 올립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MZ세대 |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