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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러프 ROUGH

환대

마음을 짓는 시간 3화(글 : 꿈장)

by 춘프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시월의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연휴에 서울에 다녀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어요. 친절한 택시기사님, 고마운 친구, 인자한 식당 사장님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환대받으며 다녀온 최고의 여행이었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를 환대하거나 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언젠가 제 글을 읽고 계신 구독자님을 환대하며 맞이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은 음악이 아닌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의 한 장면 소개로 시작할게요!






이른 추석을 보내고 10월 달력을 미리 넘겨보았다. 아싸 연휴! 또 한번 찾아오는 연휴를 확인하고 지체없이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 시월 연휴에 나 서울 가도 되니?


얼마 전부터 친구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전보다 바빠졌지만 그래도 흔쾌히 오라고 해주었다. 올 해만 벌써 네 번째 가는 서울 여행. 서울은 국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이자 나의 퀘렌시아다. (*퀘렌시아 : 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 퀘렌시아는 원래 투우 경기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을 뜻한다. 그곳에 가면 어느 누구도 소를 방해하지 않고 소는 그 동안 다음 싸움을 준비한다. 나에게는 서울 여행이 맑은 정신과 에너지를 풀로 충전해올 수 있는 최고의 퀘렌시아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서울에서 나를 환대해주는 친구 덕분이다. 일하는 게 힘들어 살이 쪽 빠진 얼굴로 올라갔을 때, 방학하자마자 신나는 발걸음으로 갔을 때 모두 똑같은 장소, 홍대입구역에서 친구는 나를 환대해주었다.


- 뭐 먹을래? 저번에 너랑 가려고 봐둔 맛집이 있어. 한 번 가볼래?


스무살 때부터 서울에 살아서 서울 구석구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 덕분에 지도만 뚫어져라 볼 일도, 검색하다 지칠 일도 없다. 서울까지 가는 길은 좀 고되지만 버스에서 내려 차가운 공기를 맡는 순간부터 모든 순간이 즐거움으로 가득찬다. 친구 집 냉장고에는 연습장을 뜯어 만든 메뉴판이 붙어있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티라떼, 에이드.. 가격은 없고 '어떤 메뉴든 가능합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요리도 잘하는 친구는 자기를 만나러 온 친구에게 뭐든 해주고 싶어 하는 진짜 'Giver'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giver에 대한 내용을 들었다. 남을 도와주고 베푸는 사람은 giver, 주는 만큼 받고자 하는 사람은 matcher, 받으려고만 하는 사람은 taker라고 한다. 그리고 진정한 리더나 성공한 사람 중에는 giver가 많다. 그러니 성공하고 싶다면, 잘 살고 싶다면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을 하고 베풀면서 다같이 잘되려고 마음 먹으라는 내용이었다. 오랜 시간 taker 또는 matcher로 살아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서울 친구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베푸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가 나에게 주는 환대 덕분에 늘 고향도 아닌 서울이 그립다. 순전히 친구 덕분이다.


둘이 같이 북한산에 가기로 한 날 비가 왔다. 등산을 계획했으면서 둘 다 일기예보는 살펴보지 않았다. 날이 좋아 마냥 기대만 했었나보다. 친구는 새벽부터 외출을 했고 나는 늦잠을 자고 천천히 나갈 준비를 했다. 친구가 올 시간이 돼서 우산을 챙겨 나갔는데 집 앞 골목에서 딱 마주쳤다. 우산을 들고 온 나를 발견한 친구는 감동을 받고는 "이래서 집에 누가 있는 게 좋나봐. 마중나오니까 좋네!"라고 했다. 나온 김에 바로 점심을 먹기로 하고 바로 옆에 있던 남도밥상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들어가서 그런가? 나는 평소 답지 않게 사장님에게 친근한 말투로 질문을 했다. (평소에는 낯을 가려서 사교적인 행동을 많이 하진 않는다.)


- 사장님 여기는 뭐가 맛있어요~? 물론 다 맛있겠지만요!


왠지 아빠랑 비슷한 연배로 보였던 사장님이 허허실실 웃으며 메뉴를 추천해주셨다. 우리가 고른 메뉴는 돌솥비빔밥과 불고기백반이었는데 돌솥비빔밥이 너무 맛있어서 순식간에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참기름 냄새가 솔솔, 이야기꽃이 끝도 없이 피어나서 불고기가 나오지 않은 것도 잊은 채 그릇들을 비워갔다. "사장님 저희 불고기 백반에 불고기 나오는 거 맞죠~? 아직 불고기가 안나왔어요." 사장님은 깜짝 놀라서 미안해하셨다. 밥이 몇 숟가락 안 남았는데 이제서야 나오다니.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여러 가지로 내놓고 요리까지 해야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정신없었을 것이다. 늦게 나온 불고기는 역시나 맛있었고 돌솥비빔밥도 부족해서 못 먹을 판이었다.


- 사장님 얼마예요?

- 이만 천원입니다. 맛있게 드셨어요?

- 네 진짜 맛있었어요. 한 숟갈 더 있으면 더 먹는건데..

- 어이구 밥 많이 줄 걸 그랬네!

- 괜찮아요. 다음에 또 올게요!

- 이 친구가 평소에 밥 많이 안 먹는데 오늘 너무 맛있었대요. (친구)

- 어이구 고맙네! 또 와요!


따뜻한 분위기, 맛있는 밥. 인자한 미소. 그 식당을 떠올리면 행복한 기분이 들고 나올 때 나누었던 짧은 대화가 생생하다. 이런 게 환대구나. 기분 좋은 식사에 감동을 받아 친구에게 말했다.


- 여기 사장님 너무 좋으신 분 같아! 밥도 진짜 맛있고. 다음에 서울 오면 여기 또 오자. 그리고 나 결심했어. 다음 학부모 공개 수업 때 부모님들 오시면 기분 좋게 환대해드릴거야.



다음 날 광주로 내려오는 길은 여전히 흐렸다. 몸은 찌뿌둥하고 버스에서 뒤척이는 내내 피로가 쌓였다. 샤워를 하고 저녁을 먹으니 이제야 조금 피로가 풀려 몸이 노곤노곤하다.


- 광주 잘 도착했어? 일 때문에 바빠서 많이 못놀아서 미안하고 조심히 가~ 덕분에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하고 힐링된 시간이었어!


친구가 남긴 카톡을 보니 이틀 간의 여행이 다시 떠올랐다. 친구가 만들어준 묵사발, 티라떼, 늘 꺼내주는 잠옷, 인자한 사장님의 남도밥상. 모든 순간이 내게는 '환대'라는 단어로 남았다. 그 고마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이번 가을은 그렇게 따뜻하게 흘러가길 바란다.





당신과 나의 이야기 | 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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