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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프카 Nov 02. 2022

마음속 허무를 카프카와 나눴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이 분명했다.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으니 말이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퇴근하자마자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날은 학생회 운영회의 있는 날이었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회의였다. 마음이 조급했다. 더군다나  참석에 분위기조차 가늠할  없는 자리였다. 10분을 살짝 넘겨 회의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복도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고성이 오갔다. 그룹방에서 알려준 장소가 맞는 다시 체크했지만 틀리지 않았다. 도저히 들어갈  없는 분위기라 잠깐 배회하다 잠잠해질 때쯤 노크  들어섰다.


동그랗게 둘러싼 풍경에 다들 표정은 어두웠다. 옆자리에 앉아계신 분께 "보통 분위기가 이렀나요?"라고 물었더니 그렇진 않다고 답했다. 그날은 학교 내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해 당사자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2시간 가까이 꼼짝 못 하고 괴성과 한숨 섞인 말투가 쏟아지는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마치 국회에서 싸움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운영진은 권위적이고 위태로워 보였다.


허기와 함께 피로감이 몰려왔다. 같은 이야기는 반복되었지만 나는 도저히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데 그 문제가 먼지 설명조차 없었다. 어떤 사건이며 가해를 입힌 학생이나 단체에 대한 팩트를 알 수 없으니까 가만히 있었다.


이내 처벌에 대한 투표를 진행하자고 말했다.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다. 비공개 투표라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어떤 흐름으로 결정했으면 좋겠는지 시종일관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나는 기권표를 던졌다.


그렇게 두 시간이 더 흘렀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는데 누군가 "새로 오신 회장님 계시는데 인사도 못했네요."라고 말했다. 총학생회장은 나를 쳐다보며 "일어서서 인사 한번 하세요."라고 주문했다. 옆에 계신 아저씨(어디 과 학생회장인지 몰라서)는 "마스크도 벗으세요. 누군지 알아야 다음에 알아보지. 잘생겨 보이네."라고 말했다. 마음속으로 다양한 육두문자와 함께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잘생겨 보이는 겁니다.'라고 잠깐 중얼됐다. 일어서서 짧게 인사했다. 식사를 제안했지만 거절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집으로 돌아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을 펼쳤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체포되었음을 알게 되는 요제프 K가 회의 내내 떠올랐으니까. 소설에선 마지막까지 그가 어떤 죄목으로 고소당했는지 설명이 없다. 첫 장면부터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느낀 바지만 꼭 비현실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일상에서 펼쳐지는 숱한 사건과 장면을 마주하면 이게 말이 돼?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그렇게 마음속 허무를 카프카와 나눴다.




+ 관련 사건을 살펴보고 있다.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무엇이 그토록 잘못되어 처벌을 받게 되었는지. 더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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