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시작에 대하여
쓰기의 시작은 편지였다
읽는 이가 분명하고 분량도 제한이 없어서 좋았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나 많았던지. 늘 편지는 기어코 두장을 넘겨야만 직성이 풀렸다. 속도도 빨랐다. 짧은 시간에 여러 편(?)을 생산했다. 맞춤법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때 느낀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다. 편지는 3년간 짝사랑했던 지영이를 시작으로 락커의 영혼을 공유하던 친구 성은이, 우리 엄마 다음으로 잔소리가 무척 많았던 모범생 상아, 그 외에도 여러 친구들에게 썼다.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위기가 발생했다. 학교를 갈 수 없으니 손 편지를 전하기 어려웠다. 이메일 주소를 받아 안부를 물었지만 답장이 없거나 늦어졌다.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이 점점 느려졌다. 몸이 근질거렸다. 고민 끝에 당시 유행하던 세이클럽을 열어 낯선 이와 채팅을 시작했다. 꾸준히 대화 나눈 고정 멤버는 10명. 대부분 나처럼 학생이었고 두 명은 이십 대 중반의 취업준비생이었다.
그날도 분주히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누군가 '채팅을 종료하면 우리가 나눈 이야기가 모두 사라져서 아쉽다.'라며 '일상을 기록하는 카페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좋은 의견이었다. 누가 카페지기가 되어 운영해 볼까요, 물었더니 모두 나를 지목했다. 곤란했지만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개설까지 3일 걸렸다. 게시판 카테고리를 구성하고 배경화면도 예쁘게 꾸몄다. 문제는 카페명이었다. 의견을 물었더니 심심한 답변만 돌아왔다. 우리가 채팅에서 자주 나눴던 키워드를 떠올려봤다. 일상, 마음, 쓸쓸함이었다. 그래, 결심했어. 2000년 7월 20일 목요일 밤 7시, 카페 <내 마음이 쓸쓸할 때>가 문을 열었다.
닥치는 대로 썼다. 기분이 좋거나 울적할 때, 성적이 형편없었을 때, 힘껏 차이거나 고백을 받았을 때, 읽던 책이나 영화가 지루하거나 좋았을 때, 삼겹살을 먹다가 문득 생각날 때. 모든 요일을 기록했다. 회원도 제법 모였다. 실제로 카페 문을 닫기까지 3년 정도 운영했는데 500명까지 웃돌았다. 돌이켜보면 그때부터 글쓰기의 힘과 매력에 빠졌던 것 같다. 사람은 (나와 닮은) 이야기에 열광하며 화려하진 않아도 진솔하고 담백한 글에 마음이 작동하는 것도, 그 시절에 배웠다.
스물다섯.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겠다며 기자를 꿈꿨다. 난생처음 쓰기 수업을 듣고 관련 책을 읽었다. 그동안 썼던 일기나 편지들이 얼마나 유치하고 형편없는지를 스스로 검열했다. 기계적으로 맞춤법을 검사하고 비문을 확인했다. 쓴 내용에 대한 팩트가 정확한지도 검토했다. 글은 나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생기가 없다고 해야 될까, 그런 기분이 오래갔다.
그리웠을까? 서툴렀지만 풋풋하게 내 삶을 기록했던 때가. 어떤 문장도 막힘없이 끄적였던 내가 그리웠나 보다. 그 마음이 커질 때쯤 브런치 작가를 시작했다. 굳이 바쁜 일상 중에 글쓰기 모임 <당신을 쓰는 밤>을 수년째 운영하고, 작년 7월부터 심야책방 <해방클럽>을 열었다. 덕분에 나와 닮은 글벗과 이야기를 마주하고 있다. 덕분에 매일 (사람과 책을) 읽고,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쉬지 않고 계속 써야만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고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
_위화
아주 오래전, 얼굴 한번 마주하지 않았지만 고단한 하루를 나누던 이들이 어떻게 살고 있을까. 혹여나 <내 마음이 쓸쓸할 때>를 아는 당신이라면 기다리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철없이 자주 흔들리는 나는, 계속 쓰면서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