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이 ‘울림’으로 바뀌는 순간
말년 병장 시절이었다. GOP(GeneralOut Post, 휴전선 철책) 근무는 지겨웠다. 철책 넘어 어렴풋이 보이는 북한군들도 심심해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닥치는 대로 책을 읽거나 상석에 누워 티브이를 보는 게 전부.
당시 KBS에서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상영됐다. 성적도 꼴찌인데다 사고뭉치인 아이들이 개과천선하여 서울대(드라마에서는 천하대) 합격이라는 기적을 일궈낸다는 뻔한 이야기였는데, 묘하게 빠졌다.
드라마에서 수능을 앞둔 학생들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본 담임 선생 역의 김수로 배우는 말한다. “(지금의) 떨림을 기억해라. 떨림은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는 훈장이다.”
떨림은 언제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뭔가 한방 얻어맞은 기분. 그날부터 눈에 보이는 책들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심한 날엔 1일 2독서도 가능했다. 글도 썼다. 비릿한 땀냄세가 묻어나는 군대용 수첩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렸다.
그때 ‘평생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썼다. 떨렸다. 두근거림에 잠들 수 없었다. ‘떨림’이 ‘울림’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