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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tainability by Design

디자인으로 지속 가능한 지구?

 


 작년 한 해 업무를 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사내 디자인 가치 판단의 척도에 다행히도 지속 가능한지 여부가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단어를 꽤나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좋아하는 단어는 아껴두고 싶을 만큼 요즘의 단어의 빠른 소비 경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재미를 목적으로 반짝 사용하고 사라지는 단어들도 있고, 장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해 의미가 퇴색한 단어를 대체하기 위해 새로이 사용되기 시작하는 단어들도 있는데 후자의 경우에는 대체제로서 기능하기 때문에 대체되기 이전의 단어의 의미를 계승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경을 고려한 디자인을 표현하는 단어도 환경 디자인, 그린 디자인, 에코 디자인, 친환경 디자인 등등 여러 가지 단어가 방점을 미묘하게 달리하며 사용되곤 했었지요. 그런데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디자인은 좀 다릅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우리의 삶에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지, 디자이너로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무엇 일지를 기록하기 위해 브런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일 수 있지만 그래도 관심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제발) 잘 부탁드립니다. 




1. 예측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변화를 도래한다.   


 글을 준비하면서, 오랜만에 옛날 테드 토크(TED talk)를 다시 몇 개 보았는데 그중에 소개하고 싶은 게 있어서 아래 링크를 걸었습니다. (혹시 동영상을 바로 삽입하는 기능 저만 모르고 있나요?)


https://www.ted.com/talks/catherine_mohr_builds_green?referrer=playlist-sustainability_by_design&utm_campaign=tedspread&utm_medium=referral&utm_source=tedcomshare



 우리가 설거지를 하면서 자주 하는 말이 있죠. "그래서 일회용품을 쓰는 게 나은 거야, 아니면 머그컵을 쓰는 게 나은 거야?" 이 테드 토크에서는 그 부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줍니다. 해당 물건을 제작하는 데 든 '내연 에너지'와 '물의 소비량' 두 가지 척도만을 기준 삼아 간단하게 비교해보는 것이죠. 주방 싱크대에 떨어뜨린 요구르트를 종이 타월 vs. 집에 있던 행주 vs. 스펀지 세 가지로 닦을 때 각각의 내연 에너지 소모량과 물 소비량을 비교해서 보여줍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행주 자체는 적당히 더러워지는 걸 감수한다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한번 사용할 때의 내연 에너지는 0이 됩니다. 하지만 세탁기에 넣고 빨래를 하는 순간 종이 타월보다 더 많은 에너지와 물을 소모하게 되지요. 스펀지 역시 여러 차례 사용이 가능해 내연 에너지는 적고 오염돼도 물로 헹구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필요한 물 소비량 역시 세탁기보다는 적어요. 다만,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사용하기 위해 물을 틀어놓고 기다렸다가 헹굴 경우에는 그 온도를 맞추기 위해 흘려버리는 양만큼 물을 더 소비하게 된다는 것을 표로 보여줍니다.

  위 영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비교 대상이 뭐가 됐든 문제를 해결할 때 눈앞에 주어진 여러 가지 선택지 가운데 환경에 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고를 수 있는 기준입니다. 영상의 후반부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기존에 친환경적이지 않았던 것들을 폐기하고 친환경적인 것으로 바꿨을 때 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반 집을 철거하고 새로운 집을 건축할 때 건축 공법이나 자재의 사용을 친환경적으로 한다고 다 환경에 이로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죠. 기존에 있었던 집을 이용하면 그 집에 이미 들어간 내연 에너지만 사용하면 되지만, 새로 건축하면 어쨌든 추가적인 내연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최소 6년에서 20년 이상 새 건물을 사용했을 때에나 유의미하게 환경에 이로운 건축이 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디자인을 할 때에는 디자인의 소재와 생산 과정에서 환경에 영향을 덜 미치는 것을 선택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디자인의 라이프 사이클을 고려해야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2. Triple bottom line (트리플 보텀 라인)   

 지속 가능한 디자인은 요즘 쉽게 듣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보통은 환경적 측면만 부각하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두 가지 항목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보다 정교한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바로 경제적 지속성과 사회적 지속성입니다.

  이 둘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존 엘킹턴의 트리플 보텀 라인에 대해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경제/회계학 용어와 친한 분들은 보텀 라인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실 겁니다. 손익계산서 맨 아랫줄의 순이익을 보텀 라인이라고 하는데, 엘킹턴은 기업을 평가할 때 회계적인 순이익, 즉 재무 성과 외에 사회, 환경적인 비재무 성과를 포함한 종합적으로 산출한 성과 측정을 통해서만 해당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이 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제적 번영, 환경적인 가치, 그리고 사회정의에 근간한 성과 측정이라고 하면 거창한 느낌입니다만 아주 단순하게 풀자면 "아동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다", "이윤만을 쫓아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재료도 서슴없이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하지 않는다"라는 등의 개별 기업에 각각 도의적인 차원으로만 요구했던 부분을 산술 평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한 고전적 정의가 이윤 추구라는 말을 익히 들어왔지만, 이윤 추구 시 자연과 사회적인 조건들을 무시하면 영속하기 어렵다는 것은 이제 팩트가 되었지요.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회적인 물의를 빚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고 반대의 경우 급락하기도 하는 걸 보면 이 세 가지 가치를 고려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발전에 필수적입니다.

  엘킹턴은 도식화를 통해서 세 가지 보텀 라인의 상관관계도 설명했는데, 이들은 순환 구조라기보다는 지구 지각의 맨틀 층처럼 계층 구조입니다. 위의 층은 아래층의 지지 위에 생성된다는 방식으로 엘킹턴은 표현했습니다. 사회는 경제에 의존하고, 경제는 지구의 에코 시스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저와 같은 순서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세 개의 층위는 서로 지속적인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그리고 정말 지각 변화를 일으키는 것처럼 층위가 부딪히는 지점에는 '시어 존(shear zone)'이라고 해서 층 밀림 현상이 일어나는 영역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환경과 경제 층이 밀리는 곳에는 생태 효율성에 대한 이슈가 발생합니다. 가격 경쟁력을 가진 재화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최소화해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소비와 생산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환경과 사회 층이 밀리는 영역에는 환경적 정의에 대한 이슈가 발생합니다. 현존하는 인류의 지역 환경에 따른 차이는 물론 세대별 지역 환경에 따른 차이가 고려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끝으로 사회와 경제적 층이 밀리는 지점에는 기업 윤리 이슈가 발생합니다. 초기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 사이의 윤리 문제를 다루는 생애 고용과 다운사이징 등의 이슈가 부각되었다면 현재는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감에 대한 폭넓은 이슈가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슈가 발생하는 지점에는 당연히 해결책에 대한 니즈도 나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 지점들과 맞물린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 방안을 디자인을 통해 모색할 때 지속 가능한 디자인 결과물이 잘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환경적인 가치를 고려할 땐 특히나 소재 선택과 사용 측면을 고려하고 경제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생산 과정상의 손실이 적은 효율적인 디자인 도안을 개발한다거나, 사회적인 이슈를 반영하며 공감할 수 있는 가치를 내포한 디자인을 개발하는 등의 일들이 지속 가능 디자인 영역에 포함됩니다. 여기서 두 가지 영역이 겹치는 지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가치 가운데 최선 혹은 차악을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할 테고요. 가장 이상적인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디자인이겠지만, 현업을 하다 보면 더 치중하게 되는 가치도 분명히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의 가치로만 판단하지 않고 위의 다양한 가치 척도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모든 변화는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위의 테드 토크에 등장한 캐서린 모어도 말했으니까요, 기대하지 않았던 사소한 데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3.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디자인보다 더 해로운 직업이 있긴 하지만, 극소수이다." 지속 가능한 디자인의 대부인 빅터 파파넥이 한 말입니다. 아무래도 디자이너는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숙명을 지녔고, 대체로 디자이너가 생각해낸 새로운 것은 자원을 소비하면서 결과물이 드러나기 때문이겠지요.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하는 문구로 자주 인용됩니다. 하지만 아시죠? 영화 <스파이더맨>에서도 나오지만, 책임감의 크기는 그가 가진 힘과 비례한다고요. 앞으로 말씀드릴 사례들은 지속 가능성에 기반한 선택을 한 디자인 결과물이 일으킨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디자인의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는 건 디자이너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비스나 제품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결과물이 나와 사용자에게 도달하고 쓰이는 전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분들이 모두 지속 가능한 가치에 공감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사용할 때 그 힘이 강력해지는 것이겠죠. 디자이너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니 많은 분들께서 함께 사례를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사례에서 만나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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