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cci의 Guccy한 Equilibrium
구찌 좋아하시나요?
2016년 전후로 해서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많이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한 해의 구찌의 매출도 아주 놀라웠지요. 구찌의 모 그룹 케링(Kering) 그룹이 발표한 '2018년 연간 수익 보고서'가 아래에 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작년 (2018년) 기준 구찌가 사상 최초로 80억 유로 (한화 약 10조 1,863억 원)의 매출을 달성해 36.9% 성장했고, 기자들은 작년 샤넬의 매출을 넘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3년째 두 자릿수 성장이라니!
인스타그램에서 "What's Gucci"라는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젊은 층이 열광하는 구찌가 된 것에는 누가 뭐래도 알렉산드로 미켈레와 그를 기용한 마르코 비자리의 파격적인 인사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글은 구찌 성공의 기반에 있는 크고 작은 지속 가능한 가치 실현의 디자인 항목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1. 구찌의 쇼핑백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례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 몇 년간 구찌, 루이뷔통 등의 명품 제품을 담는 쇼핑백을 유심히 보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디자인팀에서 일하는 저도 그냥 예쁘다 하고 넘어간 적도 많은데 만약 유심히 보셨다면 몇 가지 경향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FSC® 인증 혹은 다른 환경 인증 마크를 받은 지류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FSC® 심벌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환경 심벌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잘 보존된 산림에서 생산된 지류에 부여하는 심벌입니다. 2011년 구찌는 FSC® 인증 자재로 만든 새로운 패키지를 선보였고, 2017년부터는 구찌에서 만든 지류와 카드 보드의 100%를 FSC® 인증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친환경 인증 마크가 있고 이를 사용하는 목적은 법적인 규제 준수를 나타내거나 비용이 비싸지는 이유에 대한 근거로 사용이 되기도 했었는데요. 요즘은 아닙니다. 소비재를 만드는 브랜드에 기대하는 지속 가능한 가치에 대한 민감도가 주력 소비 계층에게 어필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두 번째는, 디자인이 비교적 단순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요란한 패턴을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인쇄 도수를 줄이고 심플하게 로고만 삽입하는 디자인이 많아지는데, 이건 쇼핑백 제작 과정의 절차 및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줄여주고 쇼핑백이 분리수거되어 재활용이 될 때에도 유리한 디자인입니다.
세 번째는, 재사용을 권장하는 문안이 적힌 경우가 왕왕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번 칼럼을 읽어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친환경 제품을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불필요한 것에 자재를 투입하지 않는 것도 지속가능성에 의미가 있는 결정입니다. 따라서, 쇼핑백의 재사용을 권장하면, 불필요한 쇼핑백의 추가 생산을 막을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이 것이 정말 의미가 있으려면, 제품 구입 프로세스에서 사용한 쇼핑백 반납을 유도한다거나, 제품을 포장해줄 때 재사용 쇼핑백을 사용해도 괜찮은 지에 대한 의사를 묻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럼 왜 럭셔리 브랜드들은 이런 변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걸까요? 주요 타깃이 이런 활동에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도 설명이 가능한 이유가 있을까요?
2. 다보스와 코퍼레이트 나이츠
구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케링의 CEO 프랑수아 앙리 피노 (François-Henri Pinault)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2013년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지속 가능한 발전은 경제의 지축을 뒤흔들 것이라며 미래에는 그것을 이해한 것 만으로 시장을 점령할 회사들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약 6년이 흐른 지금 그의 말은 사실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1월 다보스에서 세계 경제 포럼 (World Economic Forum)이 열렸습니다.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말한 것에 대한 근거로 읽히는 두 가지 인상적인 지표를 보여드리고 구찌의 이퀼리브리엄에 대해 소개해드릴게요.
출처: 블룸버그, 세계 경제 포럼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 https://bloomberg.com
먼저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된 글로벌 리스크 리포트입니다. 글로벌 리스크는 경제는 물론 세계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 위험입니다. 5 가지 요인 중 과반수가 넘는 3개 항목이 그것도 가장 상위 권에 포진해 있는 그 세 가지가 모두 환경 관련 내용이라는 점을 주목해주세요. 기상 이변, 기후 완화 실패, 자연재해 이 세 가지는 2018년과 비교하면 순위의 변동만이 있고 최근 4년간 거의 모든 해에 걸쳐 이 문제들이 5위 안에 존재해 왔다는 것을 위 표해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로 자연과 관련된 것들이 부각된다는 건 이 위협을 관리하고자 노력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기업들을 인정해주고 독려하는 지표가 중요해진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업 가운데 이 문제를 줄이고자 노력하는 기업들을 칭찬하는 지표도 있었습니다.
코퍼레이트 나이츠 (Corporate Knights)가 발표한 코퍼레이트 나이츠 글로벌 100 인덱스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2019년 케링(Kering) 사가 그 지표에서 세계에서 2번째로 지속 가능한 기업이라고 선정되었습니다. 이 지표가 인상적인 이유는 여러 산업 군을 막론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순위를 매겼다는 점입니다. 1위가 식품 기업 3위는 석유 정제 회사라는 걸 보면 2위에 패션 기업인 케링이 선정이 된 것이 꽤나 이례적이라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코퍼레이트 나이츠의 평가 기준은 그들이 발표한 보고서에 명시가 되어 있는데 출발 지점은 UN 회원국 정상들이 모여 채택한 전 세계적인 목표, 지속가능 발전목표(SDGs)입니다. 각각의 목표를 다시 기업에서 공개한 자료를 이용해 성과 측정이 가능한 세부 KPI 항목으로 풀이하여 점수 체계를 만든 것이지요.
의류계는 석유 산업 다음으로 오염 물질을 많이 방출하는 산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물, 식물, 플라스틱, 귀금속, 금속에 걸친 다양한 원자재를 소비하는 산업이기도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서라도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존재하는 것이 럭셔리 브랜드에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혹자는 소비에 기반한 럭셔리 산업이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는 것이 “그린워싱” 마케팅이 아니냐는 말도 하지만, 프랑수아 앙리 피노의 행보를 보면 그 자신의 분명한 철학 없이는 촘촘하고 장기적인 케링의 지속가능 사업 계획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는 뉴욕 타임스와의 2017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숨을 쉬고, 먹고, 꿈을 꾼다. 꿈을 꾸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럭셔리는 그 꿈의 불씨이다. 진정한 럭셔리는 진실함과 진정성에 기반하며, 제품들이 더 높은 가치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사업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케링이 럭셔리 제품으로 선사하는 꿈에는 지속 가능한 지구에 대한 꿈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느껴지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3. 구찌의 이퀼리브리엄
출처: Gucci Equilibrium http://equilibrium.gucci.com/
코퍼레이트 나이츠의 보고서 안에는 정말 다양한 과제가 있지만 그걸 하나하나 소개해드리지 않고 대신 훨씬 보기 쉽고 재미있는 구찌의 사이트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세계 2등으로 지속 가능한 대기업의 대표 브랜드, 구찌는 이퀼리브리엄 사이트를 통해 이렇게나 핫한 브랜드의 기반에는 좋은 기업 문화와 환경에 기여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뒷받침하고 있음을 감각적인 사진과 간단한 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하나같이 딱딱하고, 수치 기반적이고, 이성적인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콘텐츠 디자인을 할 때 참고가 될만한 부분입니다.
이퀼리브리엄 사이트의 존재 목적은 "사람, 지구, 그리고 목적을 연결하기 위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을 다시 환경, 사람, 그리고 새로운 모델의 총 세 가지 분류로 나뉘고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다 열어보았는데 웹사이트의 세 가지 분류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개를 드려 볼게요. 어차피 저희는 디자인에 집중해서 보려는 것이니까요.
3-1. 환경과 경제가 밀리는 층에 대처하는 구찌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
구찌의 EP&L: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 지표 화할 때 디자인의 역할
구찌에서는 케링 사에서 개발한 EP&L (Environment Profit and Loss) 시스템을 도입해서 물건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탄소 발자국"의 진화된 버전으로 "생태계 발자국"을 추적해 자재와 생산 과정 내 생태계의 손익을 계산하는 시스템입니다. 과거 측정이 어려웠던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지구 차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Cost saving to the planet)"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하였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공식을 만들어내기까지는 까다로운 수학 공식과 데이터 수집의 절차가 있었을 거라는 것은 쉽게 연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멋진 연산의 결과를 이토록 직관적인 인포그라피를 활용해 설명할 거라고는 쉽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수치상 의미 있는 자료를 선별해 적은 텍스트, 단순한 원, 익숙한 아이콘으로 지향점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건 세계적인 기업이 전사 공통의 목표를 쉽게 이해시키는데 유리합니다.
또 이처럼 의사결정의 기준이 새로 생기면 생산 공정에서 디자인 프로세스를 바꿔볼 수 있는 것들은 많습니다. 이를 테면 이퀼리브리엄의 쓰레기 배출 관리 항목에 적혀 있는 자투리 없는 가죽(Scrap-less Leather)에 대한 내용을 보면 가죽 전체를 태닝 하기 전에 사업에 필요한 패턴만큼만 가죽을 자르고 태닝을 해서 적은 양의 물,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점과, 가죽을 잘라 배송함으로써 배송 시의 부피와 무게를 줄이는데 유리하도록 운영하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솔루션으로 대량 생산을 하는 구찌에서 얻은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 2017년 10월에서 2018년 6월 1년 간의 데이터를 기반한 수치로 이퀼리브리엄에 명시
– 감소한 에너지 소비량 423,714 kW
– 감소한 물 소비량 5,227,633 L
– 감소한 화학 물질 사용량 72 tons (이 중 크롬 14 tons)
– 감소한 가죽 소비량 36 tons
디자인을 할 때 기본이 되는 소재를 정량만 사용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만으로도 수치 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부분이 이렇게 많은 것이죠. 한 가지 더 대단한 점은 이 과정 상에 늘어난 비용을 고객에게 부담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가죽을 사용하는 자동차 산업군과 협업을 제안하는 등의 치밀한 설계였다는 점입니다.
3-2. 환경과 사회가 밀리는 층에 대처하는 구찌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
Gucci-Up: 디자인의 기술적인 노하우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식
Gucci-Up은 구찌에서 가죽과 섬유 쓰레기를 업사이클링하는 데 초점을 둔 활동입니다. 그 차원에서 다양한 외부 업체와 협업을 하는데 Gucci-up의 중요 사업 중 하나는 뭄바이에 근간을 둔 아이 워즈 어 사리 (I was a Sar)와 맺은 파트너십입니다.
아이 워즈 어 사리는 과거 인도 여성들에게 많이 사랑을 받았던 사리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점에 주목하여 사리를 활용한 새로운 인도의 디자인 세계를 만들고 뭄바이의 여성 장인을 육성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사회적 기업입니다. 구찌의 협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찌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인 자수 디자인과 자수를 하는 방법을 뭄바이의 여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비슷한 느낌 느껴지시나요?
3-3. 사회와 경제가 밀리는 층에 대처하는 구찌의 지속 가능한 디자인
CHIME FOR CHANGE: 그래픽 디자인으로 사회 경제적인 메시지를 선포하는 방식
2013년 구찌에서 시작한 글로벌 캠페인 차임 포 체인지(Chime for Change)는 성 평등에 대해서 통합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기획되었습니다. 올해 구찌는 차임 포 체인지에 캠페인 슬로건을 "To Gather, Together"로 정하고 구찌 디자인의 수장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이탈리아의 비주얼 아티스트 MP5와 함께 캠페인 아이덴티티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이 그래픽은 기존에 오랜 전통을 가진 럭셔리 브랜드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에 사용한 그래픽 언어와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가 2013년의 차임 포 체인지 아이덴티티이고 후자가 올해의 차임 포 체인지 아이덴티티인데 다름이 느껴지시나요?
심벌은 보다 상징적이 되었고, 차임 포 체인지라는 명칭이 두드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래픽 자체로는 오히려 확장성을 더 많이 고려한 디자인이라고 보입니다.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두 개의 노란 바인 평등의 등호가 지나가면 단순하게 표현된 사람의 형태만으로는 100% 확신을 가지고 성별 구분이 불가능하고 나아가 무의미하다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구찌는 이 아이덴티티를 세상에 보여주는 방식도 고민을 해서 정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공공 미술로 사회적인 기여를 많이 하는 아톨루션(Artolution)과 협업해 런던, 밀라노, 뉴욕, 대만, 홍콩에 커다랗게 아트월을 만든 것이지요. 구찌의 그래픽은 대담하고, 도전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강하게 피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인스타그램의 이미지 몇 개를 보여드려 볼게요.
이미지를 보면 여기서 하는 활동들이 그냥 “좋은 취지에서”, “선한 마음으로” 하는 일들이라기 보다도 사회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에서 시작된 움직임이라는 것이 그래픽 디자인을 통해서도 느껴집니다. 굵고 단단한 텍스트의 사용과 경고나 위험을 알릴 때 주로 사용하는 검은색과 형광 노란색의 보색 대비를 주 색상으로 사용해 주제 의식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딱딱하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선이 자유로운 일러스트나 인물이 클로즈업된 아름다운 사진들과 함께 차임 포 체인지의 그래픽이 쓰이면서 차임 포 체인지의 이야기가 훨씬 풍부해집니다.
첫 번째 사례를 소개해드릴 때에는 다각도에 걸쳐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브랜드 가운데 그 자체로 흥미를 유발하고, 디자인의 시각적인 사례도 아름다운 것을 찾다 보니 구찌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기억력 증진에 관심이 많은데, 반복학습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하여 스스로 복습할 겸 트리플 바텀 라인의 지층 밀림 현상을 소제목으로 넣어보았는데 어떻게 읽히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화를 정리는 것은 제게도 새로이 구찌가 하고 있는 활동들을 들여다볼 기회였는데 쉽게 디자인으로 읽히는 사례들만 간추리다 보니 이 지면에 담기에는 어려웠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적극적으로 좋은 취지를 가진 비영리기관들과의 협업을 하고 사내 문화에 도움이 되는 교육 제도를 개발하는 등의 내용을 잘 정리하고 풍성하게 기록해두었더군요. 혹시나 관심 있는 분들이 있다면 위에 소개된 것 외에 구찌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한번 정도 들여다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