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기억을 잃고 쓰러졌다. 이게 처음은 아니다. 20대 때 직장을 압구정동으로 다녔는데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니 아침에 지하철 안은 언제나 빽빽했고, 매일 사람 속에 파묻혀 출퇴근을 했다. 난 참 잔병치레 많이 하는 사람인데 내 병명은 기립성 저혈압이다.
한 번은 서서 출근하다가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숨 쉬는 게 힘들다 느껴지면서 눈앞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1분 정도만 참으면 어디라도 내려서 시원한 공기를 좀 맡으면 될 것 같았는데 그걸 못 견디고 그 자리에서 문을 향해 손을 내밀며 쓰러졌다.
다행히 사람들이 옆에 많다 보니 나를 잡아 준 것 같고, 정신을 차려 눈을 뜨니 긴 의자의 나는 누워있더라. 모두가 나를 빙 둘러서 쳐다보고 있고 옆에 계시던 아줌마가 괜찮냐고 나를 걱정하신다.
그런데 기립성 저혈압은 누우면 피가 머리로 통해 생각보다 빨리 정신이 든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너무 창피하더라. 미칠 듯이..
눈을 다시 감았다. 다음 정거장 방송이 나오면서 문이 열릴 때쯤 나는 그냥 벌떡 일어나며 나왔다. 사람들이 나를 보며 어...!!? 어??? 하는 사이 " 저 괜찮아요.~" 하고 뛰듯이 후다닥 나와버렸다. 그렇게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씩은 그런 느낌을 받았고, 그 뒤로도 지하철에서 한 번 더 쓰러졌다.
그러고 나서 28살 때부터 차를 가지고 다니니 전혀 그런 증상이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일이란 걸 거의 안 했으니 기립성 저혈압도 오지 않았다. 그냥 가끔 어지러운 정도였다. 그런데 며칠 전 새벽 6시쯤인가? 화장실을 갔는데 속이 메슥거리고 너무 어지럽고 눈앞이 하얘지는 거다.
신랑을 부를까 해서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그다음의 기억이 없다. "쿵!!" 신랑이 놀래서 거실로 뛰어나왔다. 신랑 말에 의하면 우리 집 앞에 쇼핑몰이 공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소리가 너무 커서 그 공사 중에 뭐가 터진 줄 알고 놀라 나왔더니 내가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화장실 신발도 신은 채로... 어떻게 쓰러졌는지 기억도 없지만 무릎과 얼굴부터 박은 것 같다. 내가 쓰러진 곳은 김치냉장 고장 옆이었는데 조금만 더 걸어서 쓰러졌다면 얼굴이 찢어졌을 것 같다. 조금 후 정신이 들자 얼굴이 이상하다는 게 느껴졌다.
입술이 치아에 찍혔는지 터져있고, 코도 아프고 머리가 너무 아프고 무릎 쪽도 아파왔다. 다음날 되니 다리 멍은 더 심해지고, 코도 붓고 멍도 심하고 얼굴이 말이 아니다. 권투 선수들이 얼굴 맞았을 때 얼마나 아플지 상상이 되면서... 그냥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갑자기 서럽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다가 펑펑 울었다.
캐나다에 있는 큰애도 너무 보고 싶고 나 이러다 죽으면 어떡하지 무섭기도 하고 감정이 뒤엉켜서 모든 게 서러웠다. 병원을 갔다 오긴 했지만, 사람은 아프면 안 될 것 같다.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해진다. 그리고 겁 많은 둘째 녀석은 혼자 엘리베이터도 무섭다고 안 타는데 그래도 독립심을 길러주려고 운동 갈 때 혼자 보내지만 엘리베이터만큼은 꼭 항상 같이 타 줬다.
웬일로 이날은 엄마가 많이 아프니 둘째가 혼자 가겠다는 거다. 그래.. 이참에 혼자 보내야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하필 아이 핸드폰이 고장 나서 학원 선생님께 차를 탔는지 확인했는데 학원차가 우리 애를 태우지 않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시 태우러 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집에서 학원차 타러 가는 길이 다 보이는데 어지러워서 누워있다가 나도 미처 보지 못했다. 겁이 많은 아인데 혼자 오래 기다리며 무서워할 것 같은 생각에 너무 놀라서 나가다가 마스크를 집어 들었다. 매번 답답하고 도대체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힘들었는데, 지금은 모두가 안 쓰면 이상하게 보니 그날은 마스크가 너무 고맙더라.
"아흐흐흑... 마스크 없었으면 어쩔뻔했어.... "
다행히 뛰어오는 나를 보고 9살인 둘째가 나를 향해 걸어오면서 아픈데 왜 나왔냐고 오히려 걱정해 주는 거다. 학원차를 기다리다 안 와서 지금 집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특한 녀석. 그런데 사실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서 너무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고 했는데 그날부터는 혼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간다.
물론 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차를 타러 가지만 말이 그리고 매일 나의 건강을 체크하고 자기는 엄마의 보호자라며 귀찮을 만큼 나를 하루 종일 주시해서 현재 행복한 아픔을 느끼고 있다